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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호(육군9사단30연대2대대본부중대) 상병 (개인 순위 : 3위, 누적권수 40권)
부대명 [독서코칭 미참여 부대] 기타

전체 감상평 40

(Page 1/4)
사실 이 책은 일병 때 이미 읽었다. 내가 예전에 건축학과에 관심이 있다는 말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이었는데 올해 초 휴가 때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서야 생각났다. 그래서 별 의심 없이 고른 이 두꺼운 책은 단순히 영감을 얻고 창작하는 방법들을 나열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학문의 통섭`도 이미 여러 책들이 그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것이라 그리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읽어온 책들, 그리고 이번에 독후감들을 써오면서 이 책이 창작에 대해 원론적으로만 접근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아닙니다. 택시는 언제 어느 순간 내 앞에 이를지 모르고 / 나는 그 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철학 카페에서 시 읽기`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장정일의 시를 보고선 영감을 얻기 위한 도구들을 보여주는 `생각의 탄생`을 다시 펼쳐볼 수밖에 없었다. 아인슈타인, 피카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버지니아 울프 등 다양한 분야의 천재들의 이야기들이 소개되는 이 책은 창조하는 방법들이 모든 분야를 통틀어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말해준다. "새로운 사실의 발견, 전진과 도약, 무지의 정복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과 직관이 하는 일이다." 감성적인 방법은 예술계뿐만 아니라 과학계에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추`는 우리가 흔히 시에서 은유법으로 많이 접하게 된다. "시인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유사성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이 `유추`란 도구는 뉴턴의 중력의 법칙, 자연 모방으로 만들어진 착유기, 벨크로 등처럼 과학과 공학에도 사용이 된다. 보통 문학 작품을 통해 경험하는 `감정이입`도 과거로 돌아가보는 역사학자, 동물에 입장이 되어보는 동물학자, 심지어 박테리아 염색체의 일부가 되어보는 과학자도 사용하게 되는 도구다. 진중권이 미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던 `놀이`는 리처드 파인만이 흔들리는 접시를 보며 그 안의 전자궤도를 연구하기까지 파고들게 한다. 이렇게 즐기며 연구하는 파인만은 `이상한 논문`에 들어가도 이상하지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읽어왔던 책 제목들이 떠올랐나 하면 이뿐만이 아니다. 퍼즐을 보고 절대로 발견될 것 같지 않는 패턴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떠올랐고, 온몸을 사용해 생각하는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을 보고 `이론보다 사건과 감각을 접하라`는 최진석의 한마디도 기억이 났다. `생각의 탄생`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이 자연스럽게 모두 연계가 된 것이다. 결국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 책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들을 소개했다면, `생각의 탄생`은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들을 실행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들을 소개했다. 병장을 코앞에 두고서야 이 책의 진가를 깨달아서 굉장히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내가 독후감으로 써왔던 생각들을 종합시켜주는 좋은 계기가 됐다. 다만 저자는 서문에서 이들 모두 `도구`일 뿐임을 명시하면서 연습과 습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며,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앎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습관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지는 오늘로 40권의 독후감을 써오면서 깨달았다. `지속하는 힘`을 읽었을 당시에는 나만의 싸움에서 이기는 이 기분을 절대로 몰랐을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서 `생각의 탄생`이 소개해준 생각의 도구들도 습관화하여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길이 아닐까? 그래서 병영 독서배틀은 이렇게 마무리 되지만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부터 독파를 하는 것이 다음 목표다.2016-12-06 23:58:11
`슬픈 우리 젊은날`을 읽고선 어떻게든 제대로 된 시집 하나를 붙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독서카페에 들어갔는데, 그래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이번 분기 진중문고로 심보선 시인의 시집이 하나 들어왔는데 흔히 시집에서 보이는 네모나고 딱딱한 표지에 다시 겁이 났다. 이대로 가다간 별별 책은 다 읽었지만 결국 시집은 하나도 읽지도 못하고 전역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밖에서 구해온 책이 이 책이다. 머리말에 심보선이 있다는 글을 본 것도 있었지만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나의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존재가능성`을 찾는 일입니다." 독후감이 나만의 표현을 찾아가고 연습하는 과정이 된다는 것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르게 된 책이다. 그렇다면 누구든 시가 가장 필요할 때는 어느 때일까. 저자는 연애를 위해 상대에게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찾아 들려주려는 우리 모습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타인을 하나의 본질이나 주어진 본성으로 판단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그 타인을 부재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이 주장은 어제 생활관에서 보게 된 JTBC 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가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 누구든 바람을 핀 것은 잘못이지만 그 과정에서 대화하는 부부의 모습은 서로의 인간성을 `판단`하게 되면서 결국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다. "그래요 `내가 무엇을 했다` 또는 `하지 않았다`라고 / 말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어요 / 그리고 내 행동에 대한 당신의 평가도 괜찮아요 /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섞지는 마세요" 로젠버그의 `판단 중지`라는 개념과 함께 등장하는 이 시구는 이 드라마의 갈등을 해결해줄 결정적인 역할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나는 누구인가`에서 많은 설명과 예시들로 등장하는 "이타가 있어야만 궁극적인 이기가 완성된다."라는 구절도 한 시가 아주 적절히 표현해준다.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 안겨 있는 나를 보았다" 아주 짧은 글귀지만 동의를 넘어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1장에서 이미 그 이유가 서술되어있다. "`다른 현실의 장을 열어 밝혀준다.` 은유의 힘은 바로 이 `열어 밝힘`에서 나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주제의 시들도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책들이 주장해왔던 이야기들과 다를 바 없지만 그 힘은 훨씬 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게 해준다. 예술 작품은 자신을 바꿀 힘을 준다. 그리고 자신을 바꾸면 곧 세계도 바뀐다. 시를 감상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시를 창작하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철학이란 도구로 시의 소중함을 알려준 이 책은 시를 즐길 방법을 가르쳐준 것을 넘어서, 시를 꼭 읽어야할 이유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줬다. 이제는 시집을 들어야 할 때가 왔다. 나 자신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2016-12-05 23:58:44
채사장의 `시민의 교양`을 읽으면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됐다. 반면 사회가 얼마나 복잡한 체계로 구성되어있는지도 새삼스럽게 체감이 됐다. SNS, 1인 미디어 등 정보통신의 발달로 우리의 목소리는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게 됐지만 동시에 이런 세계화를 통해 우리가 보게 된 `세상`은 엄청나게 커졌다. 아프리카 빈민들, 세계적 테러리즘, 각종 비리 등 뉴스로 쏟아지는 사회문제들은 우리 `시민`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되면서도 그 거대한 규모의 문제에 다시 숙연해지게 만들곤 한다. 혼자서 무슨 힘이 있다고 정치를 바꾸고 세계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책의 부제가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인 것처럼 저자는 개인의 사소한 변화와 실천으로부터 세상은 바뀌기 시작한다고 한다. "페미니스트 이론에서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고 가르친다." 분리수거를 적절히 하거나, 화분에 물을 주거나, 심지어 버스에 타면서 기사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어느 세월에 세상이 바뀔까도 싶다. 먼저 우리의 이런 사소한 일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부터 몸에 와 닿도록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분리수거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는 행위가 모이고 모인다면 환경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고, 버스기사에게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세상의 따뜻함을 느끼며 그 밑에 자식들에게도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저 붕뜬 얘기가 아니다.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힘은 문학들을 읽으며 기를 수 있다는 것을 보면 화장실에서 책을 읽는 것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세계적인 NGO, 환경시민단체에 소속되어있지 않다고 해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되지 않는다고 움츠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애덤스미스도 `도덕감정론`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자기 일을 잘 해내는 것 역시, 남에게 도움이 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충분히 기여한다." 좀 더 직접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나서겠다면 먼저 정말 우리가 바꾸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이여야 한다고 저자가 주의한다. "사람들은 놀랍게도 자주 `가난`이나 `동물의 권리`같은 문제에 대해서 걱정하지만 정작 해결하고 싶은 것이 그 문제의 어떤 측면인지 분명한 생각을 갖지 못하고 있다." 나같은 경우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다. 처음엔 나만의 상상이었지만 나의 둘도없는 친구와 이 목표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친구와 `그냥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MUNI`라는 `문화예술공동체`를 만들었지만 현실은 단순히 블로그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가치관을 내 친구, 친구의 친구, 여러 지인들과 꾸준히 공유했다. 시작도 미술가가 되고자 하는 한 고등학교 선배의 전시회를 구청 강당에 조촐하게 열었을 뿐이었지만 우리 기준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려고 한 일은 아니었다. 단순히 우리 멤버들이 `좋아서` 했을 뿐이다. 이것이 당장에 세상에 큰 영향을 줬을 지도 의문이다. 다만 이 과정과 결과물을 통해서 우리가 이렇게 즐겁게 의지를 다지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모습만 보여줘도 누군가 단 한명이라도 내가 원하는 목표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데엔 성공적이다. 그 확신을 이 책 덕분에 다시 다졌다.2016-12-04 23:58:54
지금껏 써온 독후감들은 대부분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인용했다. 그만큼 완성도 있는 책이며 인간의 불안은 우리와 절대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그동안 `불안`이란 도구를 빌려 책을 감상해왔다면,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그 도구를 우리 일상을 분석하는데 사용하는 시범을 보여준다. 그 대상은 신기하게도 공항이다. 이 책은 한 회사 CEO로부터 자신의 공항 속 일상을 포착하도록 제안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저자는 일주일간 사진작가와 함께 공항 호텔과 게이트 내외를 넘나들며 단편적인 일기를 적는다. "이륙하는 비행기의 굉음이 들렸다. 수백 명의 승객들이 땅에 기반을 둔 우리 종의 기원에 대한 계산된 도전에 참여하는 소리였다." 저자의 독특한 문학적 표현력 덕분에 이런 기회가 생겼을 거다. 책상과 의자, 노트북만 덩그러니 놓아진 공항 한가운데에서 저자는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그만의 방식으로 서술한다. 여행을 할 생각으로 기대에 찬 사람들부터 보안구역에서 검열 받는 사소한 긴장감, 이를 넘어서며 펼쳐지는 화려한 면세점, 1등석만 이용 가능한 라운지, 그리고 공항을 운용가능하게 하는 많은 관계자들 등 들여다보면 공항 밖 일반 사회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공항은 사회를 집약적으로 요약한 공간이다. "공항 터미널은 현대 문화의 상상력이 넘쳐나는 중심이다." 심지어 예배실까지 있어서 종교도 빠질 수 없는 요소로 보인다.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향하게 됩니다." 이 `공항 사제`의 말은 비행공포증을 떠안고 여행하는 사람들에겐 참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그리고 나로선 `종말의 바보`를 읽었던 것이 이런 식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게다가 내가 읽기도 했던 `도덕감정론`으로 고급 라운지가 선천적으로 사랑스럽고자 하는 인간을 위한 공간으로 해석되는 장면도 보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독서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한편 `행복의 건축`으로 보여줬던 흥미로운 건축적 언어 표현들까지 공항에 적용되는 것을 보면 이 책은 `불안`을 포함하여 저자가 그동안 써온 책들에서 보여줬던 내용들을 실례로 보여줬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정작 군인인 나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을까. 공항이 곧 사회로 치환되는 점은 사실 군대도 해당된다. "군대 가면 정말 별별 사람들이 많아!" 군대에 입대할 때 항상 듣는 이 말은 저자가 공항에서 일주일만 해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두에게 생전 처음으로 낯선 공간 안에서 다들 똑같이 일하고, 놀고, 분노하고,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여행에 끝이 있는 것처럼 군생활도 끝이 있다. "여행자들은 곧 여행을 잊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이곳에 있는 기간이 21개월일 뿐 결국 여행이다. 오히려 이 긴 시간동안 우리가 저자가 느낀 감정들을 넘어 한 가지를 더 챙길 수 있다. 바로 사랑과 정이다. 영화 `터미널`에서 주인공이 9개월간 공항에서 사랑과 정을 느꼈던 것처럼 간부들과 선후임들 모두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이것이 한낱 꿈처럼 스쳐지나가지 않기 위해 이 책이 쓰인 것처럼 우리도 이 군생활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 기간이 의미가 있던, 무의미하던 함께 모여 결국 큰 의미로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2016-12-03 23:44:26
`시민의 교양`의 교육 파트에서 객관주의 인식론과 주관주의 인식론을 다루는 부분이 있다. 정답과 오답이 확실히 존재하다고 믿는 객관주의 인식론은 우리나라 교육 체제가 대표적이다. 반면 주관주의 인식론은 진리란 개인마다 상대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진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학생 스스로다. (...) 이러한 교육 방식은 다양성을 길러낸다." 북유럽 국가들의 교육 체제가 대부분 이렇다. 핀란드의 교육수준은 학구열이 엄청난 우리나라를 앞서간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그 교육 방식은 우리나라보다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청소년 행복 수준도 상위권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운다`는 핀란드 전 교육부장관의 말을 보면 교육이 우리나라처럼 단순히 좋은 학력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핀란드처럼`은 저자들도 이 말을 접하고 감명을 받아 핀란드의 교육 현장을 취재한 이야기다. 이 책은 뮤지엄, 도서관, 미디어, 자연, 사회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정말로 인생에 필요한 배움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을 통해 배우는 사람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육을 제공하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배움의 디자인’에 완성형은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거나 새로운 과제가 발견되면 반복해서 개선해 나갈 뿐입니다. 디자인 하는 사람 자신도 함께 배우면서 진화해갑니다." 핀란드의 교육 방식이 단순히 완벽한 교육 프로그램이 짜여있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받을 수 있는 관계 덕분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교육체제가 우리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채사장`은 경제체제가 교육의 형태와 문제를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북유럽 국가들이 교육에 많이 투자할 만큼 세금을 많이 걷고 국가도 안정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이런 이상적인 교육이 가능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서 지내왔던 나로선 쉽게 끄덕일 수만은 없다. 나의 학교도 매달 전시회나 공연 등을 관람하고 입시 교육뿐만 아니라 그 외 철학, 미술, 음악 등 예체능 계열도 교육했다. 학교가 돌아가는 방식도 ‘학생평의회’를 통해 우리가 직접 만들어갔다. 가르치는 교사들도 열정적이었고, 배우는 우리들도 신났다. 당연히 대학에 들어갈 생각으로 공부한다면 나라도 진저리나서 포기하거나 체념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씩 깨달았다. 우리가 배우는 것들이 정말 인생에서 유용하다는 것을. 우리나라가 이런 교육체제가 불가능 한 것은 국가의 지원이 부족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나라 사회가 `삶의 정답`이 있다고 외치는 요인이 더 크다. 사회가 각박하게 돌아가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발버둥치는 청년들. 이 악순환을 어떻게든 끊어야 한다. 국가의 미래는 아이들이다. 그들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을 안다면 당장의 이해득실을 떠나 교육 가치관과 체계에 집중해야 한다.2016-12-02 23:59:13
저번에 `7년의 밤`을 읽고 바로 산 책이다. 전작이 한 평범한 인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진 절망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번엔 극적으로 악한 사이코패스가 등장한다. 일단 이 책의 제목이 진화론을 다룬 다윈의 책과 동일한데 여기서는 `악의 기원`에 집중한다. 사이코패스는 대다수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처음부터 극적으로 악한 존재로부터 정말 악이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을까 싶다. 실제로 주인공 유진이 판단하는 행동들은 흔히 아는 사이코패스와 같이 치밀하게 효율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인지를 고려한다. "인간이 늘 `정답`을 선택하지 않는 건 그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의 눈금을 조금 낮추자 간단한 해결법이 보였다." 이 태도가 어렸을 적부터 쭉 이어져왔다는 것을 보면 유진은 빼도 박도 못할 악인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 기질이 선천적이라고만 판단하기엔 주위로 부터 받은 영향도 의심하게 된다. 발작을 없애기 위해 강제로 복용하는 약, 그를 압박하는 이모와 엄마, 꿈꿔왔던 수영을 포기하게 된 일 등을 보면 어느 정도 후천적인 요인으로도 헷갈리게 서술되어있다. 게다가 유진과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는 해진과의 관계를 보면 정상적인 인간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사이코패스 유진이 세상이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선`을 아주 낯설게 보는 장면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발작을 하지 않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타인에게 무탈하고 무해한 존재여야 한다. 세상이 어디 그런가." 그가 보기엔 세상 사람들도 악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살해를 저지른 유진을 이해 불가능한 `외계인`으로 여기고 그나마 동정 아닌 동정을 하던 나는 갑자기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됐다. 유진이 나에게 외치는 것 같다. "그러는 너는 나와 다르냐"고. 모든 인간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이들이 `선`을 어떻게 이룰까에 주목했을 뿐 `악`은 어떤 것인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악으로 가득한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한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말이다. 사회학자 토마스 홉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자연상태에 있었다. 이 상태에서 투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런 기질에서 시작된 우리는 진화하고 진화하여 오늘날까지 왔다. 그런 우리가 악을 무시할 만큼 도덕적이며 이성적인 인간일까? 그런 완전한 선의 상태가 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현재의 우리이지 않는가. 이 책의 결말은 이모와 어머니, 심지어 자수를 권한 유진마저 살해해버리는 끔찍한 이야기다. 이런 충격적인 결말은 작가의 말을 보면 우리가 악에 대처할 수 있도록 시전한 충격요법이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예술가의 `낯설게-보기`가 이렇게나 인생에 뼈아픈 예방주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2016-12-01 23:58:08
`무의미함`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견딜 수 없다. 종종 멍 때리며 침대에 누워있다고 사람들과 서로 웃으며 공감하는 일은 자기 위안일 뿐 결국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동의하긴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 무의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현대에 들어서 자기 착취적인 `성과사회`가 도래했다던가, 노는 방식도 진지한 고찰이 전제되어야 한다든지, 혹은 이렇게 독후감을 써서 배운 점을 나열하는 것들도 결국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방식 중 하나다. 이렇게 무의미는 우리 삶에 만연하지만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암덩어리로 인식된다. 왜냐하면 삶의 무의미를 인정한다면 삶의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반면 이 책에서 등장하는 배꼽의 아름다움, 스탈린의 농담, 자신을 버린 어머니 이야기 등 네 친구들의 무의미한 대화들로 이리저리 얽혀있다. 이 이야기의 첫 시작으로 암에 걸렸다는 다르델로의 거짓말조차도 그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저자 밀란 쿤데라는 진지함으로 가득한 세상에 냉소를 툭 던진다. "(바꿀 수 없는 이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하지만 내 눈에는 우리 장난이 힘을 잃었다는 게 보인다." 세상에 진지하지 못한다면 도태되어버리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뭣 하러 고생하며 자기 착취적인 삶을 살아왔는겠는가. 이해되지 않지만 한편으론 열어보기 두려운 판도라의 상자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가 내린 결론은 무의미한 농담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스토리를 보여주고 우리에게 소리친다. "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맞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무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 자신을 넘어 인류가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속을 끊임없이 헤엄치는 존재, 즉 우주 속에서 서로 도토리 키재기를 할 뿐인 초라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다음 문구를 보고선 어떤 힌트를 얻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무의미함을 사랑하는 것이라. `이상한 논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노벨상은 커녕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쓴 논문들이 아니다. 단순히 좋아서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들은 생각보다 의미 있는 과정과 결과를 보여준다. 이 책도 사실 그리 큰 의미가 발견되지는 않는다. 모든 대화의 의미들은 폭죽처럼 터졌다가 다시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무의미한 농담으로 가득한 이 책을 보며 어이없으면서도 웃게 되는 것은 우리가 무의미함에 조금은 가까워지게 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무의미의 축제`라는 제목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2016-11-30 23:59:02
나는 매번 휴가를 나올 때마다 중고서점을 들린다. 원래는 도서관을 애용했지만 군인 신분으로는 무리라 그나마 싼 가격으로 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도서관보다 좋은 점은 매달 다른 책들이 꽂혀있어서 질리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도 저번 주 휴가 때 친구에게 `그 책`을 선물 받은 기세를 이어 중고 서점을 샅샅이 뒤져서 찾았다. 제목부터 `위험한 과학책`의 업그레이드판 같아 고른 책이다. 훑어보니 이 책이 소개해주는 논문들은 정말로 이상하다. 경사면에 앉는 커플들이 요구하는 거리감, 하품 전염에 대한 고찰, 가장 긴 끝말잇기는 어느 정도까지 될지, 심지어 가슴의 출렁임과 브래지어와의 어긋남까지……. 하지만 저자 소개는 더 놀랍다. 문학 석사이자 현직 코미디언이라는 점도 독특하지만 취미는 애니 감상, BL소설 감상(이분은 남자다.), 거리 타일 사진 찍기, 마작, 그리고 이상한 논문 수집하기다. 중고 서점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런 변태적인(?) 성향이 이 책을 만든 이유가 납득이 가게 한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개그맨 중 지식인인 이윤석 박사를 대입해봤지만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여러 걱정을 안고 있었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내 방으로 챙겨왔다. 일단 코미디언인 만큼 쓸데없이 진지한 논문들을 아주 재미있게, 아니, 웃기게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논문을 쓴 사람까지 비웃지는 않는다. "장난처럼 보일지 모르는 이상한 논문은 그런 전문가와 문외한의 열정의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나는 지점에 존재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 순수함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식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 중 "경사면에 착석하는 커플에게 요구되는 타인과의 거리"라는 논문 제목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 논문이 건축학회 논문집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진지하게 표정관리를 하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조사 방법은 `가짜 커플`을 이용해 몰래 가까이서 관찰한다는 촌스러운 방법이지만 이 논문의 의도를 보면 그 순수함만으로도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논문을 쓴 동기는 `퍼스널 스페이스`의 주체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일 겨우 어떻게 될 것이냐는 의문에서다." 내가 대학생 때 스쳐지나가면서 배웠던 개념이었는데 이런 식으로까지 연구가 될 수 있다니! 학문의 길은 참 넓고도 길다. 다만 정말 쓸모없어 보이는 분야를 논문으로 썼다 해도 꼭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결론만 날 순 없다. "탕파의 수수께끼는 점점 깊어져갈 뿐이다." 탕파의 관한 첫 번째 논문 말미의 한마디다. 이 얼마나 헛된 노력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연구자들을 변호해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문은 이 `알기전보다 모르는 것이 늘어난다`는 역설에 홀려 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이 이상한 논문의 주인들은 역설적으로 `애지자`이자 `지혜로운 자`가 되는 과정을 밟는다. 실제로 `탕파 논문`을 발표한 교수는 가정학과 디자인, 순수 미술 등 다양한 학문에 있어서 위상이 엄청나게 높으신 분으로, 지금도 그 열정을 버리지 않고 연구를 계속 하고 계시다고 하다. 과학이 또한 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과 애정도 엄청나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 책에 등장하는 논문들은 대부분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에 상당한 노력들 들인 결과물이다. 답할만한 질문들만 고르는 것이 아니라 스쳐지나간 무언가를 `낯설게 보기`를 이용하여 새로운 지적 탐험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들 단순히 좋아서 하는 독자적인 활동이다. 이런 순수한 열정과 노력 덕분에 인류의 과학계가 진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이 책 덕분에 순수하게 연구에 임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감히 말하지만 내가 군 생활동안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감탄하며 읽었던 뜻 깊은 `웃긴 책`이었다.2016-11-29 23:44:50
`위험한 과학책`에서 사람이 `가장 높이 던질 수 있는 높이`에 대한 고찰이 있다. 야구공, 석궁, 투석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류가 고안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얼마나 높이 던질 수 있는 지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에 저자는 마치 아이가 되어 그저 풍선을 날려 보내는 그림으로 간단히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간혹 아이의 시선으로 주는 대답은 어른의 것보다 기발하면서도 간단히 핵심을 찌르는 경우가 많다. 창의적 인재는 21세기에 들어서 더 주목받는다. 인터넷 서점에 `창의성`이라는 단어만 쳐도 나오는 책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물론 창의성은 과거에도 없었던 개념은 아니다. 어느 분야든, 시대든 창의성이 필요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지금까지도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 책의 저자 진중권은 여기에 설명을 더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상상과 현실 사이에 놓여 있던 질료의 저항을 점점 더 무력화시키고 있다. (...) 미래의 생산력은 상상력이 될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3D 프린터, VR, AI 등은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미래엔 결국 상상력이 경쟁력임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저자는 "상상은 정신의 놀이"라며 우리는 모든 것이 놀 것으로 가득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 "창조성은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필요하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가 놀이를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봤다면, 이 책은 주사위, 애너그램, 물구나무, 만화경, 종이접기 등 인간이 옛부터 어릴 때 즐기던 놀이들에 대한 미학적인 분석으로 그 숨겨진 의미를 밝혀준다. 다만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 단순히 과거로 퇴보하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상상력 혁명은 (...) 합리성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은 아니다. 합리성이 창의성을 억누르는 지점에서 행하는 즐거운 반역이다." `미학 오디세이`로 접했던 진중권의 엄청난 필력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부분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놀이들 중 `물구나무`는 성숙해진 우리에게 가장 간단하고도 하기 힘든 놀이이자 일탈이 되겠다. 대학생 시절에 건축과 교수님도 나의 주택 모델을 이리저리 돌려보실 뿐만 아니라 아예 바닥과 지붕을 뒤집어 영감을 찾는 데 도움을 주시곤 했다. 이때부터 나의 과제는 합리적인 디자인을 고민하는 것이 아닌 재미있는 모양을 찾는 놀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창조자들은 (...) 상투적 시각, 고정된 관념을 물구나무 세워 정신의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구를 찾아내곤 했다." 이런 일탈을 언제든 즐길 수 있다면 삶은 얼마나 즐거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고정관념과 획일적인 사고도 문제지만, 요즘같이 봇물같이 쏟아지는 정보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천진난만한 놀이고 여기저기 휘둘리는 길인지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자는 상상의 순간에서 `성숙의 지혜` 또한 전제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시킨다. 결국 자신만의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사유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의 천진난만함으로의 동시적 여행"은 세상에서 앞서갈 수 있는 힘을 준다는 말이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강력히 동의하는 만큼,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단순히 최첨단 시대가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랑이란, 한 소녀가 향수를 바르고, 또 한 소년이 애프터 쉐이브를 바른 후 만나서 서로의 향기를 맡는 거예요." 이 5살짜리 아이의 사랑이란 정의가 정말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2016-11-28 23:54:34
저번 주에 휴가를 나왔을 때 만난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다. 안 그래도 인류멸망을 꿈꾸는(?) 친구이기 때문에 더 의미 있었던 책이다. 그렇다고 인생에 무의미를 느끼거나 다크써클이 진한 친구는 더더욱 아니다. 이 책도 제목처럼 지구멸망이 코앞인데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바보처럼 평화롭게 일상을 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식료품 가게에서 식재료를 사와 밥도 해먹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오고, 심지어 동네 이웃들과 모여 6대6 조기축구를 하는 것은 이상야릇하면서도 소소하게 즐거운 일상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아름답다고 할 순 없다. 8년 뒤 소행성이 충돌한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 5년 전, 그 때는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살인과 폭력, 강도질이 난무했다. 아직도 잘 살아있었냐는 인사가 익숙해진 것은 물론 과거에 소중한 사람들 잃었던 등장인물들로 가득하다. 모든 사람이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상황, 그들의 중한 듯하면서도 일상적인 인생 고민을 안고 있다. 연을 끊었던 가족을 다시 만날지, 아이를 낳을지, 애인을 어떻게 구할지, 그리고 그동안 꾸준히 해온 일을 계속 할 것인지 고민이다. 어차피 3년 뒤 모두가 죽는다는 결말은 정해져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고민이다. 어째서 그럴까. 책 `불안`은 말한다. "우리 자신의 소멸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귀중하게 여기는 생활방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할까. 첫째는 사랑이다. "3년 뒤, 세상이 끝날 때 아버지 곁에 있어줄 사람은 어머니일 거예요."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원한 건 사실 사랑이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왠지 익숙한 문장이다. `도덕 감정론`도 말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할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세계 멸망이 코앞인 지금, 모두가 원칙을 지킬 것이란 신뢰는 어느 때보다도 클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예정된 죽음이 인간을 수평적인 관계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 힘은 이미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도 아름다운 인연은 새로 만들어지며 계속 되도록 만든다. 특히 `가족의 탄생` 챕터에선 아무런 혈연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대가족이 만들어 지는 기적까지 이루어졌다. 이것이 사랑의 힘이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깨달은 두 번째는 `살아있음`이다. "지금 당신 삶의 방식은 얼마나 살 생각으로 선택한 방식입니까?" 이 말을 했던 킥복서 나에바는 정말 소행성이 곧 떨어질 것을 알고도 맹연습을 한다. 그 외에도 몇몇 경찰은 물론 여러 가게 주인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 많이 드러난다. 마치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는 딱히 실감이 나질 않았는데, 나에바의 말을 듣고서야 아프게 들렸다. "발버둥치고, 몸부림치고, 아등바등하고. 살아남는다는 건 그런 걸 거야, 분명히." `살아남기란 축복`이라 했던 김진애 박사도 떠올랐다. 다들 그저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덕분에 거창한 선행 없이도 이런 따뜻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면 나도 그 이야기에 힘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인류는 멸종하는 길에 가서야 아름다워질 수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을 명심하며 살아가야한다는 말이 이 뜻인가 보다.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는 곧 알록달록 예쁜 `지구멸망기원` 문신을 새길 거라고 한다. 다 읽고선 그 친구, 한결이에게 연락했다. 네가 말하는 세계멸망은 이런 뜻이었냐고. 다만 그 대답은 "그런 의미는 별로 생각해 본 적 없어."란다. 오히려 솔직한 대답인 것 같다. 우리가 필멸자임을 새겨두고 한결같이 사는 것이 곧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솔직해지는 것이니 말이다.2016-11-27 23:3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