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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준(육군1사단12연대1대대3중대) 일병 (개인 순위 : 8위, 누적권수 40권)
부대명 [독서코칭 미참여 부대] 기타

전체 감상평 40

(Page 1/4)
"미래에 멋진 작가가 될 이준에게. -성윤- 2016. 8. 1." 책의 커버를 넘기면, 붓펜으로 그려진 하나의 구절이 눈에 띈다. 이 문구는 전역하기 몇 일 남지 않은 어떠한 선임이 자신의 후임을 위해 적어놓은 응원의 메세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책을,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과 함께 후임에게 남기며, 그는 전역했다. 그와 처음 만난 날, 긴장한 후임에게 선임은 먼저 말을 건내왔다. "넌 무슨 공부를 하고 있니?" "아... 그게 그냥 책을 읽고 있습니다." "따로 공부하는게 아니고?" 후임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분명, 후임은 자신의 모습이 어리석게 보였으리라 생각했다. 후임의 생각과 달리 선임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 너도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있구나. 혹시 그걸 나에게 들려줄 수 있겠니?" 이윽고, 후임은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선임 앞에 내보였다. 어린시절의 생활과 학창시절의 모습까지. 그것을 듣고있는 선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자신의 꿈에 귀를 기울여주는 그 순간만큼은, 선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결국 후임의 이야기는 `독서를 하는 이유`로 끝이 났다. 그 끝을 맞이한 선임은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잠시만…."이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그리고 그는 한 권의 책을 후임 앞에 내민다. "이 책이 너한테 필요한 책일 것 같아." 후임은 어떨결에 한 권의 책을 받게 되었다. 후임은 어떠한 책인지 요리조리 살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선임은 말을 붙였다. "너에게 주는 책이지만 사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어. 조금만 기다려 줄래?" 그런 선임의 말을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후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말을 남긴다. 선임은 후임에게 준 책을 가져가 버린다. 자신에게 책을 주는건지 아닌지 도저히 알 길이 없는 후임은 자신의 잠자리로 돌아간다. 바쁜 일정 소화로 인해 아침일찍 서둘러 생활관 밖으로 뛰쳐나가는 후임은 그 날, 내게 책을 주었다가 가져가버린 어떤 선임의 전역날이란 사실이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냐, 이미 지난 일이지. 그렇게 시간은 지나간다. 막사로 돌아온 후임은 자신의 관물대 아래에 놓여진, 어제 봤던 선임의 책을 발견한다. `가지고 가기 귀찮아서 나한테 던져 두고간걸까` 후임은 그런 생각으로 아무렇지 않게 커버를 열었다. "미래에 멋진 작가가 될 이준에게."라는 문구가 내 눈앞에 보였다. 누가 적은 걸까? "-성윤- ". 아, 어제봤던 그 선임이다. 그가 후임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책과, 지금 남겨진 책에는 다른 점이 전혀 없었다. 그 문구만 제외하면 말이다. "이 책이 너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걸 느꼈지만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난 홀로 생활관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그가 준 소중한 책과 함께. 그 선임과의 운명적인 조우는 이리도 짧게 끝나버렸다. 휙하고 사라진 그는 나에게 큰 선물을 남겨주었다. <글쓰기 좋은 질문 642>은 질문만 642개로 구성되어 있는 질문집이다. 그럼에도 독자는 일단 책을 열고, 보이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책의 궁극적인 활용법이다. 이 많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부족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채우게 된다. 작가라는 꿈을 쫓는 나에게 가장 알맞는 선물이라고 그 선임은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난 책을 온전하게 읽은 책만을 감상문으로 작성해왔다. 하지만 지금 쓰려하는 이 책의 감상문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전히 읽지 않는, 아니 읽지 못하는 책으로써 마감할 듯 하다. 김성윤 병장이 주고 간 선물을 나는 단순히 감상문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삼기는 싫다. 내가 진정으로 책을 활용하는 것이 내게 건내준 그의 마음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어느 새, 독서배틀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그 대미를 장식하는데 이 책과 함께하는 것은 나에겐 크나 큰 영광이자 기쁨이다. 나와 오랫동안 지낼 이 책과 함께 나의 40일간의 여정은 여기서 조용히 끝을 맺는다.2016-12-06 23:50:32
"한 작가의 모든 글 중에서, 단 한 문장, 단 한 줄이라도 독자에게 기억된다면 그 작가는 구원을 받으리라! 독자의 기억을 파고든 한 문장은 다른 내용까지 모두 떠올리게 하고, 그 책에 대한 관심과 감동을 지속시켜 줄 뿐만 아니라, 다시 읽고 싶은 욕망까지 일으킬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펼쳐지지 않는 책은 존재할 뿐 살아있지 않다. 고운 먼저들의 품에 감싸안긴 책은 어쩌면 속이 텅 빈 직육면체 상자에 불과하다. 텅 빈 직육면체를 들어올린 다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주석을 달아보고 밑줄을 치며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독서 방식이다. 좋은 독자는 읽으면서 쓴다. 그리고 좋은 독자는 문신을 그리는 예술가이다. 독서는 책과 독자 단 둘만의 전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독자는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개념을 정복하기 위해 책에 대항한다. 무지를 넘어서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에 몰입힌다. 과연 이 싸움이 독자와 책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한 낱의 불협화음으로 끝날 것인가. 그것은 우리, 독자에게 달려있다. 그런데 작가와 독자는 서로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여느 친구가 그렇듯 서로의 신경을 건드린다. 그렇기에 반박하고, 반박을 요구하라. 그 자체가 부싯돌이 되어 불꽃을 피울 것이다. 의문을 품어라. 지금 이순간 그대가 읽는 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라. /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소설 속의 인물들이 자꾸만 떠올라 소설을 펼치기를 거듭하며 그들을 만나러 간다. 즉,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야말로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진정한 친구라 여기고, 덕분에 위태로운 현실의 삶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곤 한다. 나는 <추락천사>라는 책을 읽었을 때, 주인공 루스의 여정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궁금증으로 인해 책장은 쉴 세 없이 쌓여갔다. 나는 이런 진정한 친구들을 나의 친한 현실 친구들에게 소개해주려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보통 책을 읽는 행위를 선(善)으로 착각하는데, 독서는 선이 아니다. 사람들은 책을 읽으라는 말을 듣자마자 독서에 대한 마음이 싹 사라진다. 고결한 행동을 공공연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반감을 가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고결한 행동`을 하기 위해, 수 많은 책들 사이를 비집고 찾으러 나선다. 그런데 어떻게 경이로운 작품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비결은 많이 읽고 많이 실패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 방법뿐이다. 더 많이 읽고 더 통렬한 실패를 경험하고, 또 다른 책을 읽는다. 이때 독자의 발목을 잡는 위험한 함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게으름과 소심함, 그리고 가장 위험한 겸손함이라는 함정이다. 이 책은 어려워서 내가 소화하기에 힘들거야! 이런 말은 적절하지 않다. 세상에서 독자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책들도 아주 많다. "열정은 가장 뛰어난 이성이다." 이 말을 기억하자. 다양한 책들 중에서, 짧은 문장과 긴 문장 둘 다 있는 책이 좋기는 하다. 긴 문장은 짧은 문장의 민첩함을 느끼도록 해주고, 짧은 문장은 긴 문장의 그윽함을 알게 해준다. / 저자 샤를 단치는 이름난 애서가이자 독서광이다. 그는 <왜 책을 읽는가>를 통해, 독서의 가치와 즐거움을 흥미롭고 개성있게 풀어냈다. 이러한 독서 예찬이 일찍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독서광으로써 행하는 독서예찬뿐만 아니라, 샤를 단치라는 작가의 면모도 옅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후대의 독자들이 내 작품을 새로 해석할 수 있는 요소들을 작품에 곳곳에 남겨 놓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내 작품을 읽고 의외의 면에 놀라기도하고 즐거워했으면 좋겠다."라는 문장은 내가 작가라는 길을 걸어갈 때, 적지 않는 영향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전해 받았던 샤를 단치의 최고의 한 마디, 이를 남기며 글을 마쳐본다. "죽은 자들이라도 평화롭게 쉬도록 놓아두는 것에 반대한다. 평화 속에서 영면하도록 내버려진 작가는 이 세상과의 인연이 완전히 소멸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2016-12-05 23:51:38
재수를 시작한 5월의 어느 날에, 나는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학원비로 낼 55만원 현찰을 가지고 서울로 걸음을 옮겼다. 그 곳에서 `성공`하여 나를 무시하는 모든 사람들이 - 심지어 부모님까지 - 나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충당하기로 계획한다. 출발을 앞둔 상황, 지갑이 사라졌다. 조금 전 PC방을 갔었는데, 다시 가보니 그 곳 화장실에서 빈 지갑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되버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과 구매한 버스표로 서울에 도착했다.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청소년센터에 하루를 묵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곳의 상담선생님은 진심으로 나를 설득했다. 정말 `기회`를 원한다면 밑바닥부터가 아닌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빠른 길이라고 조언했다. 틀린 말은 아니였다. 내가 한 번 꾹 참으면 더 좋은 곳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거절했다. 내 스스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 나태주 `행복` / 집은 편안했다. 오늘 잘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내게 가장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불 밖으로 몸을 옮겨 하루를 시작할 때, 다시 우울해졌다.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아니, 할 줄 아는 것이 없는데 하고 싶은 것은 많으니 무엇을 할지 선택하지 못했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게임`. 게임에서 이기면 무엇을 해냈다는 성취감이 생겨났다. 그 성취감에 중독되고 도취되어 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몰골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은 분명 슬픔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셨다. 아니, 그저 내가 모르는 척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 "후회하고 후회하며 사는 나를 자꾸 후회하고." - 이시하 `후회하는 나` 중에서. / 성취감에 벗어나, 피곤함이 찾아올 때는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후회가 나를 반겼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 모습은 왜 이 지경인가. 침대에 누워 베게를 베면 눈물이 나왔다. 내가 원하는 인생은 이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 미래는 이게 아니기 때문이다. 눈물이 메말라 눈이 감길때면, 창문 밖에서 차소리가 들렸다. 멈추다 달리고 멈추다 달리는 차의 소리와 달리, 나는 그저 멈추어만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나를 보러 온단다. 동래까지는 온다고 하니, 나는 일찍이 준비하여 지하철로 향했다. 4호선을 타서 동래역으로 갈 생각에 무작정 지하철을 기다렸다. 유리문에 그려진 광고들 사이로 익숙한 이름이 눈에 보였다. `이문세`. 그가 시를 적었다. `농담`이라는 시를 천천히 읽어갔다. /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이문세 `농담` 중에서. / 기차에 올라탔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속에 못 나갈 것 같다고 전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친구를 급히 거절한 이유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던 이유는 기차에 탑승한 내 얼굴이 눈물범벅이였기 때문이다. 종은 아파도 더 아프려고 한다. 아파 죽겠는데 아프려고 한다. 그래야 종소리가 멀리 울리니까. 나도 종처럼 아팠다. 마음 깊숙히 시리고 아팠다. 근데 그 아픔이 종소리를 널리 퍼지게하기 위함이란다. 그럼 나도 모르게 내 종소리는 멀리 퍼지고 있었다는 것인가. 나는 내가 울리는 종소리를 미처 몰랐던 것인가. 종은 종소리를 울리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나의 `종소리`를 울리기 위해 존재한다. 난 지금까지 아픔의 이유를 몰랐다. 그저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사실 `종소리`를 위함이였다. 나는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난 처음으로 `아픔`을 받아들였다. 예전과 달리 도망치지 않고 말이다. /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군대에서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 길 위에 나는 한 시집을 발견했고, 그 속에서 내 오래된 추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을 만들어준 소중한 `20살`. 그때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2016-12-04 23:51:57
에드워드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토끼다. 소녀 애빌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그녀가 준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에드워드에게 깊은 사랑을 보내는 애빌린에 비해, 애드워드는 그런 대우가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했다. 받은 만큼 애빌린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영국으로 항해하는 중, 못된 아이들의 장난으로 인해 에드워드는 애빌린의 손을 떠나 바다에 잠기고 만다. 조용한 바다 속에서 그는 난생처음으로 `두려움`을 경험한다. 오랜시간이 지나고, 폭풍이 닥쳐온다. 그로인해 에드워드는 어떠한 어부의 그물에 잡히게 된다. 살아있음에 기쁨을 느끼게 된 에드워드는 늙은 어부 로렌스의 손에 거쳐서, 아내인 넬리에게 전해진다. 넬리는 그를 소중히 대했다. 에드워드는 여자의 옷을 입었지만, 넬리가 종일 부엌에 있는 동안 그녀의 옆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애빌린이 이야기를 할때 지루하고 쓸모없이 느꼈지만 지금은 자신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란다. 갑자기 들이닥친 노부부의 딸 롤리에 의해 쓰레기장으로 보내지기 전까진, 그는 노부부와의 시간이 행복했다. 이제는 쓰레기들에 덮히고 묻히며 오랜시간을 지낸다. 하지만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온다. 개 한마리가 에드워드를 물고 멀리 떠나버린다. 개는 주인 앞에 에드워드를 보여주었고 주인은 같이 길을 잃은 처지인 에드워드를 동행시킨다. 부랑자 불과 개 루시와 함께, 그는 많은 부랑자들을 만난다. 처음 에드워드는 웃음거리의 존재였지만, 점차 모두에게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소중한 존재로 변해간다. 하지만 셋의 여정은 빈 화물칸에서 끝나고 만다. 객차담당관은 에드워드를 객차 밖으로 던져버렸다. 에드워드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나이 많은 여자가 그를 줏어가 밭의 허수아비로 써버린다. 그 모습을 본 소년, 브라이스는 몰래 에드워드를 구출해주었다. 사실 브라이스는 그를 동생인 사라에게 가져다 주려던 것이였다. 몸이 아픈 사라는 에드워드를 소중히 품고 미소지었다. "내 아가." 몸이 온통 따스하게 데워지는 듯 에드워드에게 뜨겁고 격렬한 감정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기침 발작이 점점 더 심해졌고, 그녀를 위해 브라이스는 하모니카 반주에 맞추어 에드워드를 줄에 매달아 춤을 추게했다. 그녀는 활짝 웃었지만 날이 갈수록 증세가 심각해졌다. 에드워드가 춤추는 시간이 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운명은 멈추지 않는 듯, 에드워드를 품에 안은 루스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사랑했던 그녀가 떠나버렸다. 에드워드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 없이 어떻게 세상을 살 수 있을까. 혼자 남게된 브라이스는 에드워드와 함께 멤피스로 떠난다. 거리에서 공연을 펼치는 에드워드는 춤을 추고 싶지 않았다. 사라를 위해 춤을 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가슴은 텅 빈 것 같았다. 브라이스는 식당으로 가지만 돈이 부족하여 식당주인에게 추궁을 당한다. 그가 괘씸하여 식당 주인은 에드워드를 던져버리게 되고, 에드워드는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에드워드는 죽었다. 그러나 인형 수선공, 루시어스에 의해 다시 살아나게 된다. 브라이스는 돈이 없었기에 에드워드가 그에게 양도된다는 조건으로 수리를 맡겼다. 그리고 브라이스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남기고 에드워드 곁을 떠난다. 시간이 지나고, 에드워드는 백 살 넘은 인형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에드워드에게 조언한다. "마음을 열어. 누군가 올거야. 누군가 널 위해 올거라고. 하지만 먼저 네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해." 에드워드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회중시계를 감고 고개를 숙여 에드워드에게 놓아주며 `나는 네게 돌아올 거야.`라고 말하던 애빌린이 생각났다. `누군가 올 거야.` 도자기 인형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에드워드의 오랜 기다림 끝에, 한 여자아이가 그를 팔에 안았다. 딸 옆에는 부인이 서 있었고, 그녀의 우산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에드워드는 부인의 목에 두르고 있는 시계를 발견한다. 회중시계. 바로 에드워드의 시계였다. 사랑할 줄 모르는 토끼 에드워드가 결국 사랑을 찾아 나가는 이야기. 나에게 찾아온 것에 깊이 감사한다.2016-12-03 23:51:36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중략) 들이 마셔 봐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의미를 들여마셔봐요. 그것은 지혜의 열쇠고, 좋은 기분의 열쇠이며…" - `무의미`의 정의. 여성의 매력 중심이 가슴, 허벅지, 엉덩이가 아닌 배꼽이라 생각하는 알랭이 있었다. 암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다르델로가 있었고, 그에게 연민을 느껴서 그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려는 라몽이 있었다. 라몽은 파티를 준비하는 샤를과 만나 `바람둥이 카클리크와 지극히 평범하고 진지한 다르델로`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스탈린이 24마리의 자고새를 모두 쏘아죽이는데 어떤 한마디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들은 측근들이 그걸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샤를은 이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삼고 싶어한다. 이 이야기 속의 측근들은 스탈린이 없는 화장실에서 소리높여 그를 조롱하고 비웃는다. 그리고 문 밖의 스탈린은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듣게된다. 과거, 10살에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알랭은 물에 잔뜩 젖은 낯선 여자와 어깨를 부딪히는데, 그가 먼저 사과를 건낸다. 그리고 `사과쟁이`에 대해 이야기를 샤를과 나눈다. 그는 먼저 사과하는 것이 약해보이고 자기의 잘못을 밝히는 치명적인 것이라 말한다. 마치 관객없는 배우처럼 행동하는 칼리방은 파티에서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척하는데, 그것이 하녀 마리아나의 호감을 사게된다. 파티속의 알랭은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그녀를 가벼이 여기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어떻게 아버지에 의해 임신을 하게 되었는지 상상하게 된다. 파티를 지겨워 하는 라몽은 프랑크 부인이 남편을 잃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수 많은 인파속에서 샤를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깃털 하나를 멍하니 보게되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 위를 쳐다본다. 프랑크 부인은 마치 장엄한 오페라의 처럼 한 구절을 노래하고, 깃털은 부인의 손가락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다. 그리고 부인은 그곳을 떠난다. 그런 모습을 본 라몽은 자신에게 없던 `기분 좋은 마음`을 찾고 자리를 떠난다. 파티가 끝나고 샤를과 칼리방도 떠난다. 칼리방은 그곳의 하녀, 마리아나의 순결성을 그리워한다. 다시 장면은 스탈린에게로 돌아가는데, 측근들에게 `의지 위의 의지`를 연설하고 자신을 믿지않는 측근들에게 분노한다. 그리고 알랭에게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멍청함의 근원이 뭔지 아니? 선량함! 네 그 터무니 없는 선량함이라고!" 그저 알랭은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공원에서 술이 깨고 만난 라몽과 알랭은 배꼽에 관해 논의한다. 다르델로는 그들과 합류하고 이름모를 사냥꾼과 노름꾼이 나타나, 공원엔 `무의미의 축제`가 벌어진다. 이 책은 나에게 난해하고 심오하며 어려운 책이였다. 그렇지만 `무의미`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 이것이 삶의 지혜가 될 수 있을거란 점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또한 여성과 성욕을 독특하게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에 감탄을 불렀다. `사과쟁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또한 일품. 그리고 바람둥이 카클리크의 부분에서 나는 주옥같은 명대사를 주워담을 수 있었다. "침묵은 주의를 끌지.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어.",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되.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될 것 같은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 것 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주지. 조심할 필요도 재치도 가질 필요도 없어져. 접근이 쉬워지는 거지." 본문의 내용보다 2개의 명대사가 더 와닿는 나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숨겨진 바람둥이의 기질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마지막 한 구절을 남기며 글을 마치려 한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 뿐이지." 2016-12-02 23:26:06
"자기만의 언어를 찾아내는 힘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창작의 힘이라 할 수 있지요. 시를 쓴다는 것은 대상을 품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표현해 내는 것입니다. 그 모든 세계를 이해하는 시작은 철저하게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요." - 본문 중에서. 나에게는 시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해가 쨍쨍한 여름날이였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공부에는 별로 탐탁치 않는 학생이었다. 그저 옆에서 누군가 하니까 따라하고, 하기 싫지만 티를 내지않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국영수가 중요하다라는 말이 매일 매일 지겹도록 널리 울려퍼지던 그때는, 많은 학생들처럼 학원을 다녔는데 오로지 영어와 수학에만 편향되었다. 이상하게도 국어라는 과목을 위해서 크게 교육을 받은 것은 없었다. 아마 국어성적 만큼은 부모님 마음에 들었던 것일 터이다. 2학년이 되자 한 명이였던 국어선생님은 두 명으로 늘어났다. 두 분은 성향과 스타일이 서로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특히 각자의 개성과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 여겼기에, `모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여자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자유시를 지을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주셨다. `똥`을 이용하여 재밌게 시를 만든 학생도 있었고, 우등생답게 우수한 작문능력을 뽐내는 학생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나의 솔직한 마음을 종이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탄생한 나의 `첫` 시는,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묻어나는 시였다. 슬프기 때문에 몸이 울고 마음이 울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다. 몇 일이 지난 뒤, 선생님은 내 시를 액자로 만들어서 학교에 걸어두자고 제안했다. 선생님은 어린 15살의 나이에서 우러나오질 못할, 그렇기에 처음 느껴본 감정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했다. 미술부의 도움으로 나의 시는 보라빛의 배경과 함께 액자에서 그 자태를 들어냈다. 벽에 걸린 액자를 볼때마다 나는 흘깃거리면서 지나갔다. 분명 남에게 겸손해보이고 싶다는 충동 때문이였을것이다. 어찌되었든 나의 시는 많은 학생들에게 읽혀졌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서 나의 창작문학은 생애 최초로 타인에게 `인정`받게 된다. 오랜시간이 지나고, 이 작은 사건은 어른이 된 나에게 `작가`라는 꿈이 틀리지 않았다는 지향점이 되어주었다. `재능이 없다`라는 핑계로 내가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둘 수 있는 수단으로써. 그리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 `잘하는 것`을 선택한 지금, 두번 다시 후회하지 않고 되돌아가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말이다. 많은 학생들의 시가 이 책에 놓여져있다. 독특한 발상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표현하는 시도 있고, 따스한 햇볕처럼 우리의 마음을 간지르는 시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박지훈 시인의 `상처`에 눈길이 갔다. "(중략) 아침이 밝아 벌떡 일어나 / 엄마 보러 큰방에 갔습니다. / 엄마는 없고 / 아빠만 쿨쿨 잠을 잡니다. / 아쉬워 / 내 방에 돌아와 / 눈을 감지만 / 꿈속의 아침 / 밝아 오지 않습니다." 박지훈 시인은 쓴 시는 `상처`를 포함해서,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시가 대부분이였다. 그리고 그 시들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깊은 슬픔과 우울함이였다. 우리 주위의 누군가가 오랫동안 비애에 잠겨있다면, 우린 분명히 그가 걱정되어 염려스러울 것이다. 계속 저렇다면 무너질텐데, 일어설 수 없을텐데 하고 막연하게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저자 이낭희의 구절을 인용하려 한다. "내 안의 아픔을 고백해서 얻어지는 치유가 진정으로 시가 주는 선물일 거에요."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는 것은 그것을 표출함으로써 스스로를 다독이고 일으켜 세우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수단으로 박지훈 시인은 `시`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아주 옳았다고 생각한다. 문득 나도 박지훈 시인처럼 나의 슬픔을 표출하기 위해, 그런 시를 썼는지 궁금해진다. 집의 오래된 창고에 고히 잠들어있는 내 과거의 시를 한 번 깨워보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라고 여겨지는 오늘 밤이다. 내 과거의 `흔적`을 보기위한 휴가를 기다리면서 글을 마쳐보도록 한다. 2016-12-01 23:51:57
"20대인 나에게 스스로가 묻는다. 너는 60대의 자신과 대면할 용기가 있는가." - 책을 덮으면서. 언젠가 10대였던 나는 30대라는 시기가 나에게 찾아올때, 곧 인생의 끝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지금 20대인 나는 40-50대라는 시기를 맞이하게 될때, 곧 지는 꽃이자 지는 해라고 여겼다. 화려하고 젊고 패기넘치는 그런 삶이 끝나는 것은, 곧 나에게 종언을 울리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내가 `60대`라는 단어를 맞이할 때 무슨 기분이였을까. `끝`이라는 글자를 넘어서는 완전한 끝이 있다면, 그 끝의 언저리가 60대의 나의 자리라는 생각을 품었다. `끝나버린 인생`, `종료된 삶`과 같은 단어를 이용하여 `나이먹음`을 표현하는 나는 그만큼 나이를 먹게되는 것에 아주 민감했다. 분명 그 나이에 이루지못한 내 욕심이, 목표에 도달치 않은 내 노력을 탓하려 하는 것일터이다. 또한 어두운 미래라고 함부로 단정짓고, 그런 나의 `60대`를 마주할 수 없어서 겁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나에게 스쳐지나간 중요한 깨우침이 하나 있다. 재무설계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나의 미래를 훑어보는 것이다. 대강적이라도 나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재무설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를 통해서, 나는 불투명한 나의 미래에 지레 겁을 먹었고, 도망치려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도망쳐왔다는 이야기가 도출되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으로 나는 책을 덮었고, 내 결심을 표하는 마지막 종착점을 이 곳으로 삼으려 한다.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심리계좌 돈에 관한 다섯가지 착각>은 우리가 심리계좌라는 요소로 인해 소득, 저축, 소비, 자산, 부채에 관해서 착각과 오해을 하고있다고 알려준다. 나는 책 속으로의 여정을 통해, 소득이 정확하게 얼마인지 모른다는게 얼마나 위험하고 미련한 일인지 배울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소득도 잊어서는 안되며, `공돈`으로 여기기 비정기적인 소득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배웠다. 그리고 저축을 하는 것은 빚이 없다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려 한다. 저축의 진정한 목적은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용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 또한 잊지않을 것이다. `고정지출`의 위험성은 꽤 긴시간동안 제대로 배운 것 같다. 또한 신용카드와 세일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면밀하게 알 수 있었다. 투자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쓸 돈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쉽게 해답하는 것이다. 내리면 오를 것 같다고, 오르면 더 오를 것이라고 팔지못하는 그런 투자에 내가 당장 쓸 돈마저 투자해버리는 멍청한 짓은, 이 책을 이후로 나는 하지 않을 것같다. 좋은 빚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빚 없는 인생을 위해 빚을 갚고자 노력한다면 `고정지출`에 과감하게 칼을 대는 식 등으로 눈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제와서 알게되었다. 이런 착각에서 빠져 나와 돈 걱정 없이 살기위한 해결책이 존재했다. 고정지출을 줄이는 삶을 택하되, 본능적인 소비를 억지로 죽이려 하지말고, 절약하려고 피와 땀을 흘리는 피곤한 시간을 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돈을 모을때는 저자 이지영만의 4단계 저축플랜에 따라 현재의 안정감을 최우선하는 방식이 소개되었다. 현재의 안정감이 해결되어 투자를 위한다면, `변동성`이라는 수익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소득이 많이 번다고 행복한게 아닌 것처럼 비교하는 조건, `준거집단`을 유의하라고 했다. 더 나아가 국민연금, 소득공제, 보험, 금리, 노후에 대한 그녀의 조언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작은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놀랍고도 거대한 `파워`는, 나에게 힘이 되고 살이 되었다. 무엇보다 큰 용기를 선사해주었다고 단언한다. 그로인해 대답하기 꺼려하고 피했던 질문에 난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 이지영에게 큰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나의 대답과 함께 글을 마친다. / "넌 너의 60대를 맞이할 수 있는가?" / "그렇다" 2016-11-30 23:50:59
"바깥에서 지켜보던 동물들의 시선은 돼지로부터, 인간에게, 인간으로부터 돼지에게, 다시 돼지로부터 인간에게 왔다갔다 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 분간 하기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구별하기란 이미 불가능해져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존스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매너농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동물들은 돼지를 중심으로 <동물주의>라는 신념하에, 단결하여 혁명을 이루어낸다. 동물을 위한 농장을 이루어 내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은 인간을 몰아내었고, 매너농장을 `동물농장`으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동물을 위한 `칠계명`이 세워진다. 합리적인 사고의 돼지 스노우볼은 어려운 칠계명을 쉽게 풀이하여, "네 다리는 좋고 두 나리는 나쁘다"는 말로 표현한다. 도망간 존스와 인간들의 습격에도 묵묵히 견뎌낸 동물농장은 풍차건설이란 논제로 인해 의견이 좁혀지지 못했다. 결국 스노우볼과 돼지 나폴레온을 필두로 동물농장은 양분된다. 허나 그것도 잠시였다. 돼지 나폴레온은 자신들의 부하 개들을 풀어서 스노우볼을 습격하였고, 무력으로 동물농장을 지배한다. 스노우볼에 의해 자진해서 이루어 졌던 노동의 강도는 나폴레온에 의해 점차 강해져 간다. 마치 노예가 일하듯이 돼지들이 다른 동물들을 부렸으며, 칠계명으로 정해놓은 규칙조차 나폴레온 멋대로 몰래 바뀌어졌다. 그에 따라, 금지된 향락을 누리는 나폴레온과 시간이 지날 수록 굶고 힘들어지는 동물들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불만을 품는 동물들은 대변인 돼지인 스퀼러에 의해 무마되었다. `모든 원흉은 도망간 적 스노우볼에게 있다`며 동물들의 분노의 방향을 엉뚱한 스노우볼에게 돌렸으며, `존스의 통치시대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지금이 낫다는 생각을 심어줌에 동물들은 불만을 스스로 잠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노우볼을 부르는 <동무>라는 말은 언젠가 <위대한 지도자>로써 변질되어 갔다. 은퇴를 앞둔 말 복서에게 사고가 발생하여, 치료를 받도록 조취를 취하겠다며 그를 농장 밖으로 데려가려 한다. 복서를 데리러 온 마차는 의사의 마차가 아닌, 도살의 목적을 담고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늙은 당나귀 벤자민은 서둘러 이 사실을 밝히지만 때는 늦어버렸다. 그리고 복서는 명예롭게 죽었다는 소식만 전해졌다. 몇년이란 세월이 흘러 돼지들의 공화국으로써 `동물농장`은 그 자리를 더욱 굳건히 하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존재하는 동물들은 생활이 힘들고 절망스러웠지만 폭군과 같은 인간의 밑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크게 슬퍼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암말 클로버는 돼지들이 두 다리를 이용해 걸어다디는 모습을 보게된다. 또 돼지들이 인간처럼 옷을 입고 모자를 쓰는 장면조차 목격한다. 양들이 어김없이 외치는 "네 다리는 좋고 두 나리는 나쁘다"는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욱 좋다!"로 바뀌어버렸으며 칠계명은 어느 새 사라지고, 단 하나의 계명, "동물은 평등하다. 다만 몇몇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만이 존재했다. 동물의 적이였던 인간들은 동물농장으로 시찰을 오게되는데 돼지들이 다른 동물들을 부리는 모습을 보며 칭찬하였고, 그날 밤 돼지와 인간들은 서로 술잔을 나누며 그들의 우정을 돈독히 하였다. 그러나 어김없이 돼지와 인간사이에서 싸움이 발생한다. 서로 똑같은 스페이드 에이스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동물들의 눈에 누가 인간인지 누가 돼지인지 알 겨를이 없었다. 러시아 혁명과 현대 정치를 비판하기 위해 조지 오웰이 지은 소설이다. 우화의 형식을 이용했기 때문에 쉽게 가르침을 전하면서 재미라는 요소를 잡아낸 책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어릴 적, 읽어봤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 겪게되는 동물농장의 비극은 그때와는 전혀 색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린시절에는 나폴레온에게 향한 분노만이 몸소 느껴졌다면, 지금은 단순한 분노와 함께, 받아들이기만 하는 무지한 자들의 입장과 잘못된 사회를 막으려 했던 보이지 않은 노력, 그저 방관하는 자의 모습 등 여러가지 면모를 보게되었다. 다시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준 이 책에 감사하며 글을 마쳐본다.2016-11-29 23:42:45
"뉴스가 지배하는 시대에 온전한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움과 중요함은 그 범주가 겹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알랭 드 보통. 현대사회에 가장 영향력 있는 수단인 뉴스를 우린 기회가 될때마다 확인하려드는데, 이는 세상을 옳게 살아가고 있다는 안도심과 언제 재앙이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뉴스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찌 대항하는지 교육받지 못하였다. 정치뉴스 분야에서 우린 뉴스 순환 속도가 요구하는 것만큼 빨리 상황을 변화시키는 건 누구라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뉴스를 통해 보이는 사방의 `못된 짓`에 절망하기 전에 뉴스란 기본적으로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는 한 묶음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해외에 관한 뉴스에서 보여지는 `비일상적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일상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뉴스미디어의 경이로운 기술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 정보를 받지못하고 있다. 기사를 뒷받침하는 사진과 이미지를 제대로 이용하면서, 보통의 삶에 대한 사전지식이 이례적인 일들에 대하는 우리를 좌우한다는 걸 미래의 해외뉴스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뉴스라는 렌즈를 통해 보게되는 경제 `논쟁`은 대중의 기대와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한 대중의 감각 모두를 엄격한 통제선 안에 가두고 있다. 완벽한 뉴스 서비스라면 현재의 사안을 분석하면서도 이상적인 사회를 그려내려는 과감한 경제원리도 전해야할 것이다. 경제지표나 상품들을 계속해서 일상적으로 분석해야겠지만 덜 불안하고 덜 파괴적이면서도 더 안전하고 의미있는 노동이 가능한 세상을 향한 큰 꿈에, 경제뉴스가 궁극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셀레브리티는 그들만의 성실함과 전략적 사고를 통해 특별한 위업을 이룬 사람들이다. 뉴스는 샐러브리티 섹션을 지금만큼 흥미진진하게 만들되, 풍부한 심리학적 해석이 가능하고 교육적으로 가치있는 고귀한 정신의 소유자들을 소개하면서 성공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것인걸 상기시키고 명성에 대한 갈망을 해소시켜 더 나은 번영으로 우릴 인도해야 할 것이다. 재난뉴스는 `인간이 고통받고 있다`는 유익한 메세지를 보이고 있다. 그로인해 우리의 슬픔을 어느정도 덜어주며, 죽음에 대한 생각을 심어줌으로서 삶의 의미를 회복하게 해준다. 우린 그러한 끔찍한 행동과 사고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소비자정보뉴스는 진정한 행복을 돈으로 찾는 것은 어려우며 완전한 존재가 되고싶은 우리의 열망에 최선의 답을 줄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로 우릴 슬기롭게 인도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뉴스를 시청했지만 어찌 활용하는지,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몰랐기에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던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나와,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해를 도우려 <뉴스의 시대>가 출간되었다. 포괄적인 뉴스의 지향점을 소개하고, 각각의 뉴스들을 세부적으로 들어가 지적하고 바로잡으려한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론이 아닌가`라며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정확하고 핵심을 찌르는 그의 설명에 나는 말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작가의 생각이 과감하게 표현된 부분들에 특히나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누군가로부터 시샘을 받게 될 만한 일을 해내려면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고요한 은둔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고요한 은둔의 중요성을 표현했고, "어떤 예술작품이 지닐 수 있는 가치의 상당부분, 심지어 결정적인 부분이 관객이 처한 심리적상황에 따라 달리 받아 들여진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예술을 습득함에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을 소개했으며, "깊은 밤, 그날 하루 타협하고자 했던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이 들때, 우리 삶의 한 귀퉁이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소중한 것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있는 걸까 하는 고통스러운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자책에 대한 그의 표현은 나의 마음을 간질렀다. 언젠가 다시 읽어보게될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도 알랭 드 보통의 머릿속을 유유히 떠다니며 여행하지 않을까. 그 날을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2016-11-28 23:40:49
"세상에 그 어떤것도 당연하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된다" - <파이프라인 우화> 중에서. 1801년에 있었던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파이프를 연결해서 물을 옮기자는 파블로와 그것을 거부한채 묵묵히 단순 노동으로 물을 옮기는 브루노가 있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파이프라인은 마을을 위한 성장제 역할을 톡톡히 하게된다. 그러면서 도태되는 브루노의 모습과 자신의 계획을 전세계로 확대하려는 성공한 파블로의 모습은 크게 비교가 된다. 여기서 물을 옮기는데 2가지의 형태가 나온다. `물통나르기`와 `파이프라인`이다. 물통을 나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스스로 시간을 투자해야하며, 신체적인 문제나 집안의 사정이 생기면 돈을 벌 수 없게된다. 다만 파이프라인은 설치하는데 크게 힘이 들뿐, 설치하고 나면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발생한다. 파이프라인 같은 수단을 인세수입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인세수입은 진정한 시간적, 재정적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길이다. 지속적인 수입이 없더라도 크게 벌어드리는, 다시말해 거대한 물통으로 물을 나르듯이 돈을 벌면 되지않느냐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버는 양이 많아지면 씀씀이도 커지는 법이다. 고로 미래를 담보할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그리고 `레버리지`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배가의 원리`를 사용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배가의 원리`를 언급하였다. 이 원리는 부의 창출에 있어서 기본적인 초석이라고 설명된다. 처음시작한 것이 2배가 되고, 4배가 되고, 8배가 되는 형식이다. 그리고 작가는 정기적으로 투자하라는 과제를 세운다. 매일 정기적을 투자하되, 절대 찾아쓰지 말고 배가의 원리에 따라 돈이 증식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50년 파이프라인이라는 이름과 걸맞게 장기적으로 크게 봐야하는 단점을 가졌다. 그리고 등장하는 또 하나의 파이프라인은 5년 파이프라인이다. 돈이 없을때는 시간을 레버리지 하라는 뜻에 걸맞게, 5년 파이프라인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이란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다. 작은 단위의 시간 사용, 여유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간 레베리지 수단은 `e-파이프라인`, 다시말해 인터넷을 이용한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라는 조언을 남긴다. 전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을 이용해 비지니스를 행하는 회사들은 자신의 회사에 충성하는, 철새가 아닌 고객들을 원한다. 그런 면을 공략해서, 많은 사람들을 `소개`만 해주는 것으로 고객들을 늘려가고, e-비지니스 회사와 연결시켜 그에 따른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시간을 레버리지하라는 5년 파이프라인의 주장은 크게 와닿는다. 돈을 무기삼아 다룰 수 없는 우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시간이야말로 탈출구이자, 해결책이라는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여유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평소 나의 다짐과 거리가 아주 가까웠기 때문인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반면, `e-파이프라인`의 견해를 들었을 때, 여러가지의 관점에서 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봐도 `다단계`라는 느낌을 크게 버릴 수가 없었다. 고객이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이 나의 소개를 받고 2명의 사람을 찾아나서 소개를 해주는, 그리고 그 방식이 `배가의 원리`와 어울러져 표현되는 것은 단맛이 아닌 쓴맛이 느껴지는 부분이였다. 책의 내용은 이해하기 쉽게 표현되어있다. 배움의 끈이 길든, 짧든 작가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지만, 반면 어느정도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인지, 아니면 일부러 슬쩍 넘어가 버리는건지 오해의 여지가 마련 될 가능성을 보았다. 이 책에 대한 주관적인 평을 내리면서 글을 마친다.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은 독특하고 기발했다 하지만 왠지 나사가 빠진, 온전히 완성되지 않은 책의 모습에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2016-11-27 23:4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