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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제4회 군장병 독후감 공모전
  • 작성자. 캠프리딩
  • 등록일. 2019.10.21
  • 조회수. 148

병영독서 활성화와 독서코칭 성과로 공군 18전투비행단 세 병사가 일군

4회 군장병 독후감 공모전

 

군장병 독후감  군인가족 생활수기 공모전 우수상 시상식

강원도와 강원도민일보, 육군 지상작전사령부가 공동 주최하고 육군 제2군단이 주관한 제4회 군장병 독후감 공모전이 참가 대상을 기존의 육군에서 해군, 공군까지 확대하며 역대 최다인 총 870편의 작품이 접수, 열띤 경쟁과 심사 끝에 영광의 수상자가 가려졌다. 그런데 대상과 최우수상, 장려상을 휩쓴 공군 제18전투비행단의 쾌거가 눈에 띈다. 더욱이 수상자 3명 중 두명이 독서코칭 프로그램 참여병사였다. 병영독서 활성화로 이룬 성과, 세 공군병의 독후감 소개와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상 두 눈으로 걷다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강혁수 일병 공군 18전투비행단 공보정훈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전자담배를 입술에 끼우고 상큼한 향을 머금은 연기를 내뿜으며 내게 말했다. 생각난다고, 청사과 맛 담배를 태울 때면 같이 강릉에 놀러 갔을 때가,레몬 맛 담배를 태울 때면 힘들었던 작업이 막 끝났을 때가.

여태 한 번도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쉽사리 공감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 나의 태도를 눈치 챈 듯이 친구가 덧붙여 말을 이어나갔다. 지나간 기억들이 그때 내가 피웠던 담배의 맛에 따라 기억이 떠오른다고.

 

저마다 순간의 느낌을 간직하는 방법이 있다. 누군가에겐 냄새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겐 촉감, 그리고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 누군가의 얼굴, 심지어는 친구와 같이 담배 맛이 될 수도 있다.

내겐 걸음이 그렇다. 정확하게 말해서 내가 지나온 발자국들이 기억들을 되살린다.나는 걸음걸이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많이 걷는다. 버스 세 정거장 정도는 곧잘 걸어 다녔고, 밤이면 내 발걸음은 조금 더 추진력을 받았다.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면서 사람들이 잘 거닐지 않는 골목길들을 돌아다닐 때면 마치 육신이 분리된 채 영혼만이 떠다니는 듯한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 시간에 구속되지 않고 여기저기 걸어 다녔다.

그러다보니 평소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살이를 접할 수 있었고 쉽게 지나쳤던 것들도 세심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하루는 신촌에서 술을 마시고 막차가 끊겨 집(혜화역)까지 걸어가야되는 상황이 생긴 적이 있었다. 지도를 켜 보니 대략 도보로 4시간 정도가 걸리는 긴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시간도 시간인지라 고민을 하다가 택시비를 아낀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앞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얼마만큼 걸었을까, 단단히 부푼 힘줄들이 내 종아리를 옭아매고 있음이 느껴져 잠시 쉬었다가 가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DDP(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있는 평평한 구조물에 등을 맞대고 하늘을 바라본 채 잠시 몸을 맡겼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잠이 들 만큼 여유로웠다. 항상 사람들로 가득한 이곳에 나 혼자 깍지 낀 손을 뒤통수에 대고 누워있는 지금 이 순간이 여유롭고 좋았다. 밤에 이렇게 혼자 걷다보니 별의 별 경험을 다 해보는구나 싶었다.

계속 누워있다 보니 따뜻한 온기가 먼지처럼 덮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침대 위 이불이 생각나 얼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내가 있던 곳을 빠져나와 도로를 따라 다시 걸어가자 저만치에 모여 있는 불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싶어 발걸음을 옮겨보니 동대문의 도매상인들이 벌써부터 오늘 장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었다. 새벽 3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도로는 다마스와 오토바이로 가득했고 양 손에 보따리를 묵직하게 든 사람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특별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나와는 또 다른 발자국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이 내겐 특별하게 느껴졌다.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단순한 이 걸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그때 내가 읽은 책이 바로 걷는 사람, 하정우. 어디가 간지러운지 모를 내 궁금증을 이 책이 풀어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연기파 배우, 열정적인, 인간미 넘치는, 부지런한내 머릿속에 인식되어 있는 하정우에 대한 모습들이다. 스크린 속 그의 모습만을 봐왔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부여한 정의들이 허상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에 대한 수식어들은 어느 정도는 내 마음속에서 뚜렷해졌다고 할 수 있다.

책은 수필 형식으로 쓰여져 있는데 읽다 보면 그의 목소리가 들릴 만큼 완전한 자신의 말투로 글을 썼다는 것을 그가 나온 영화 몇 편을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나는 그렇게 하정우가 옆에서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듯 책을 읽어 나갔고 걷기에 대한 서로의 교집합점이 많아 공통된 생각들을 찾아가는 데만 해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제목 그대로 하정우는 나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더 많이 걸었다.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은 그에게 있어서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매사에 걸어 다니는 사람이었고, 여행을 가서도 특별히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그저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 다니면서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들을 찾아 먹으러 다니는, 걸음 속에 삶이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정우도 말했다. 걸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고, 그저 그렇게 걸을 뿐이라고, 왠지 걷지 않는 날이면 온몸이 근질근질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오죽 하면 그는 걷기 모임을 직접 꾸려 스케줄이 없는 날이면 오른쪽 허리춤에 만보기를 채워 놓고 다 같이 걸어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단순한 걷기 모임일 뿐인데 그 속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존재했고 모임에 속한 사람들 모두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기에 내가 그들을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게 만든 이야기 하나가 있다.하정우와 그의 지인들이 함께 도전하는 하와이에서의 10만보. 평소 3만보씩은 걷는 그들의 첫걸음은 가벼웠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이 도전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10만 걸음을 걷는 것 뿐인데하는 근본적인 의구심들이 침묵 속에서 그들 안에 전염처럼 퍼진다.

그렇다 해서 입 밖으로 통증을 내뱉는 사람은 없었고, 서로의 뒤통수에 시야를 의존한 채 다시 한 번 힘겨운 발걸음을 이어나간다. 그들은 길고 긴 인내 끝에 성공의 기쁨을 함께 나누지만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10만보를 걸었다는 것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형성되진 않았다.

하정우 또한 그랬다. 힘든 여정 이후 엄청난 보상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결승선을 통과하니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뿌리내리며 걸었던 걸음들은 양분이 되어 거대한 줄기를 차츰 형성하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까지 나의 지난 2년은, 내가 속한 그룹에서 선두로 치고나가기 위한 스퍼트를 낸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내 무릎이 어떤 상태인지, 내가 어디까지 달려왔는지도 모른 채 존재하지 않는, 아니 존재하지 않을 골인점을 향해 그저 앞만 보고 누구보다 열심히 달렸다.

허상의 반환점에 도착했을 때 즈음에 나는 차츰 속도를 줄여 걸음을 멈췄다.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내 이름조차 없었다. 그저 여느 사람들과 같이 참가번호만이 배꼽위에 붙여져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달려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서라도 다시 내 이름표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함께 떠났다. 혼자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이라 몸도 마음도 준비되지 않은 채 우린 강릉에 도착했다. 숙소도 전날 급하게 잡은 거라서 위치가 썩 좋지는 않았다. 바다를 보려면 택시를 타고 족히 10분 넘게 가야 하는 거리였다.

내가 굳이 강릉에 간 이유는 내가 바다를, 드넓고 푸른 지평선이 펼쳐지는 그런 바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내게 있어서 그 부분이 크게 중요하진 않았다. 어떻게 됐든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고민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난 무엇이 하고 싶은 건지,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들을.

백지장 같은 바다와 하늘을 아무리 쳐다봐도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답답했다.빗방울을 머금은 바닷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왔지만 시원하지 않았다. 친구와 가벼운 저녁식사를 마친 뒤, 우리에게 남는 건 시간이었던 터라 숙소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나는 괜한 오기가 생겨서 휴대폰 지도 없이 발길이 닿는대로 무작정 가보자는 제안을 했다. 그 제안에 친구는 흔쾌히 발걸음을 맞춰 주었다. 우린 그렇게 정해져 있지 않은 길로 숙소를 향해 걸어 나갔다. 어느 곳으로 가던 길은 나왔다.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는 그때 드는 마음에 따라 결정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앞만 보며 걷다가 갑자기 친구를 불러 세워 그 자리에 같이 멈춰 섰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재밌는 그런 생각. 나는 친구에게 우리 한번 짜잔 하면서 뒤돌아보자고 얘기했다. 친구는 별 시답잖은 짓을 다 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이내 내 말을 들어주었고 같이 하나, 둘을 외치고 뒤를 돌았다.

살인마가 갑자기 튀어 나오거나 귀신이 보이거나 했던 건 아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에 홀로 서 있는 가로등이 주황색 불빛을 흘리며 그 주위를 은은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 옆에는 광막하게 펼쳐진 논밭이 푸른 월광을 하늘로 반사하며 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지나온 길은 꽤 아름다웠다. 나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보러 이곳에 왔는데, 지금은 바다를 흉내 내는듯한 이 논밭이 더 좋게만 느껴졌다.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걷는 보폭만큼 나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조금 더 걸어보고 싶었다. 숙소를 찾아야 된다는 생각은 이미 내 머릿속에서 잊은 채 지나온 발자국에서 이곳의 향기와 지금의 기억들이 머물러 있길 바라며 한걸음 한걸음 꾹꾹 눌러 담아 걸었다. 노란색이 좋았고 거친 아스팔트 도로가 좋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걷다보니 노란색에 눈이 자꾸만 가는 내 자신을 발견했고 도보를 벗어나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내 다리가 보였다. 신기하게도 우린 1시간여 만에 숙소를 찾아 도착했고, 친구는 나의 신이 난 걸음을 따라오느라 지쳤는지 들어가기 전 청사과 맛 전자담배를 피우며 숨을 골랐다.

 

하정우는 10만보를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채 한걸음씩 내디디며 생각을 정리한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내게 큰 감동을 주거나 교훈을 안겨주는 내용은 아니었으나 이 책은 나의 지난 발걸음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격려해주면서 나와 함께 옆에서 걸어주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그저 목표만을 향한 가벼운 발걸음이 아닌 조금 더 의미 있는 발걸음을 자신있게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여름 나를 성장시켜준, 현재는 내가 근무를 서고 있는 이 곳 18전비 강릉에서, 지금도 나는 오늘 위에서 걷고 있다.

 

 

 

 

강혁수 일병과의 일문일답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달라?

사람과 이야기를 좋아하고 영화감독을 꿈꾸는, 대구에서 올라온 23살 강혁수입니다. 현재 강릉 제18전투비행단 공보정훈실에서 좋은 분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상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 소감을 부탁한다

우선 이 대회를 주관해주신 모든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다시 한 번 전하고 싶습니다. 평소에 글을 자주 쓰는 편은 아닌데, 덕분에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처럼 항상 고민을 들어주고 생각을 나눠주는 우리 아버지와 언제나 저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시는 어머니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상작을 읽다보면 입대 전에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실존과 방황의 모습이 아스라이 전해진다. 그 삶의 목표와 방향을 모색하는 길에서 군대생활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직 군생활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지나온 시간이 희미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보면 의미는 발자국처럼 새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내 삶에 있어 군 생활이 좋은 의미로 남을 수 있도록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낼 생각입니다.

 

책은 얼마나 읽고, 자신에게 독서란 무엇인가?

책은 한 달에 많게는 네 권씩 읽습니다. 한 책을 계속해서 부여잡고 읽기보다는 읽던 책이 싫증날 때쯤이면 이 책 저 책 돌려가면서 읽는 편입니다. 독서란 제 안의 세계를 넓혀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세계의 수를 확장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우수상

이 일병의 말그릇, 이 병장의 말그릇

말그릇을 읽고

 

병장 이현범 공군 제18전투비행단 운항관제대

대관령 너머에서 꽃샘추위가 매섭게 불어오던 작년 3, 나는 강릉 제 18전투비행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잠시 솔선수범하며 잘 이끌어주는 선임들 덕분에 군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여름이 되자 어느새 후임들도 꽤나 생기고 업무적으로도 여유로워졌다. 그런데 몸이 편해질수록 이전에는 당연시여기며 넘어갔던 한 선임의 가시 돋힌 말들이 속을 살살 긁기 시작했다. 내가 정한 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한 후임의 태도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편한 점들을 가슴에 담아두기보단 솔직하게 말하기를 택했다. 7월 어느 날, ·후임에게 각각 날을 잡아 내 속내를 가감 없이 토해냈다. 처음에는 말만 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선임은 언짢음을 표했고 이내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후임과는 크게 싸웠고 이후 사사건건 치고 받다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이 일로 관계 맺음에 큰 회의감을 느낀 나는 상담병사인 김 상병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야기를 듣고 위로해주던 김 상병님은 상담이 끝날 쯤 내게 큰 도움이 될 거라면서 책 한권을 추천해주었다. 바로 심리상담가 김윤나 씨가 쓴 말그릇이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었다. 그런데 책을 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책 머리말에 소개 된 말그릇이 좁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은 내가 선·후임에게 했던 말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향한 진심어린 조언은 결국 나만의 기준에 맞춘 지적에 불과했다. ‘이 일병의 말그릇에는 타인을 존중 할 공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처음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마저 김 상병님이 나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여긴 것 같아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 했다. 말그릇이 좁은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있었고, 책을 통해 내가 선·후임과 화해하는 방법을 좀 더 쉽게 터득하길 바라는 김 상병님의 뜻을 어렴풋 헤아리기 시작했다. 김 상병님이 왜 내게 말그릇을 읽어보길 권유해준 이유를 깨닫자, 한 번 책 속의 내용을 따라가 내 말그릇을 넓혀보기로 마음먹었다.

책은 감정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본문에는 말하기에 앞서 특정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진짜 감정을 찾으라고 쓰여 있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져봤다.

나는 정말 선임의 말투에 화가 났던 걸까?’

 

고민 끝에 내린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처음에는 그저 평소 친동생 마냥 살갑게 대해주다가도 어느 순간 필요 이상으로 내 행동을 지적하는 선임의 모습에 불안하고 무서워했다. 하지만 상황이 반복될수록 선임에 대한 두려움은 적대감으로 둔갑해버렸다. 진짜 감정을 파악하지 못한 이 일병은 선임에게 짜증 섞인 어조로 속마음을 표출해버렸고 이는 선임과의 관계에 불을 질러버린 격이 되었다. 다음으로 공식과 습관에 대한 문단이 이어졌다.

저자는 책을 통해 삶의 배경을 통해 나와 상대방의 가치관(공식)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그리고 이 공식이 대화에서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는지(습관)를 파악하라 제안했다. 잠시 책을 덮고 과거 모습을 회상해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필요 이상으로 눈치를 많이 봤던 나는 민폐를 끼치지 말자 다짐하며 주위에 선(공식)을 그었다. 누군가가 영역을 침범하려 하면 불쾌함을 내색하며 밖으로 내쫓기에 바빴다(습관).’

 

생각을 정리한 뒤 후임의 평소 사람 대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후임은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을 때 허울 없이(공식) 다가간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습관).’

 

우리는 20년 넘는 시간동안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만큼 평소 말을 할 때도 서로 다른 공식과 습관을 적용해왔다. 그리고 군대라는 낯선 환경 속에 차례차례 들어온 만큼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일병은 너무나도 빨리, 그 해 여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름틀림으로 여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가오던 후임에게 창을 겨누어버렸다.

앞으로는 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책에서 제시한 대화 기술을 연습하며 말그릇을 넓히자 마음먹었다. 먼저 듣기에 집중했다. 잠시 할 말을 멈춘 채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할 거리를 찾았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말을 적게 하니 오히려 상대방의 말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경청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은 마음의 열쇠와 같아서 대화하기 전에 혼자 오해했던 점들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책의 내용이 체화(體化)되었다고 느꼈을 즈음, ·후임에게 다가갔다. 책을 읽고 단순히 반성하는 수준에서 끝나기 보단 직접 선·후임과 맞부닥뜨리며 변화한 내 모습을 보여주어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먼저 작년 늦가을, 주말 늦은 밤 후임에게 찾아가 처음 내가 후임에게 느꼈던 감정과, 이후 고민의 내용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내 진솔한 이야기을 들은 후임은 한참을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상병님이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싫었는데 저도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이 상병님 말대로 우리는 서로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닙니다.”

 

후임의 포용에 나는 감동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편하게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다음으로 올해 초여름, 선임이 말년 휴가를 나가기 전 늦게나마 자신이 그동안 내가 과민했음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했다. 뒤늦은 사과였지만 선임은 흔쾌히 받아주는 동시에 한층 성숙해진 것 같다며 존경을 표해주었다. 그 때서야 선임의 넓은 아량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날 이후 과거 일을 떠올려보니 예전에 선임에게 받았던 지적도 어느 정도 합당했음을 깨달았다. 좋게 매듭지어 다행이지 참 부끄러운 추억이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이제 강릉기지에는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 나는 어느새 병장모를 쓰고 다니며 선임들은 모두 전역해 후임들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병장은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까? 작년과 달리 이젠 대화할 때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려 노력한다. 특히 후임들은 대대 최선임인 이 병장에게 조금씩이나마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똑같은 말을 해도 과거 선임에게 말했을 때보다 두 세 번 더 고민하고 말을 한다.

또한 대화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우리 모두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병장의 말그릇에는 타인이 머물고 속내를 털어 둘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 병장은 요즘 주위 후임들과 함께 미숙하게나마 대화의 왈츠를 추고 있다.

 

 

이현볌 병장과의 일문일답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달라

강릉 18전비에서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활주로에서 새를 쫓고 오염물질을 처리하며 항공운항 및 안전의 최전선에 서있는 병장 이현범입니다!

 

최우수상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 소감은

예전부터 취미로 수필이나 시를 쓰곤 했는데 이렇게 글짓기 분야에서 큰 상을 타게 되니 글쓰기에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상병 때부터 구상했던 단편소설도 한동안 난관에 봉착되었는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다시 끄적끄적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좋은 작가가 되어 다시 한 번 HIM에 찾아뵙고 싶습니다.

 

독서코칭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독서코칭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독서코칭 수업마다 최소 한 번씩 같이 수업 듣는 전우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덕분에 여러 사람들 앞에서 제 생각을 표현하는데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2년간의 독서코칭 발표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추석, 비행단 내 콘서트에서 사회를 맡아 잘 진행한 걸보니 아무래도 말하기 달인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군생활이 얼마 남지 않은 선임으로서 후임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군 생활을 인생에 있어 잠시 쉬어가고 배워가는 시간이라 생각하니 훨씬 즐겁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공부나 독서를 통해 지적으로 성장하든, 전우들과 체력단련을 하며 신체를 건강하게 키우든, 아니면 본인에게 가치 있다고 여기는 어떤 일이든 다양한 활동을 하며 보내길 바랍니다.

 

 

 

장려상 너로 인해 바닥에서 튀어오른다

회복탄력성을 읽고

 

일병 최대한 공군 제18전투비행단 제112전투비행대대

누구나 한번쯤은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겪거나 좌절을 겪는다. 그리고 비관적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 경험을 딛고 이겨내서 더욱 밝아지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많은 시간들을 대인관계로 힘들어하며 우울증을 겪으면서 매일같이 죽음을 고민했던 내 어린 시절의 날들은 현재의 내가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거름이 되어주었다. 그래서인지 대대 책장에서 읽을 책을 뒤적이다가 책의 부제인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유쾌한 비밀에 시선이 꽂힌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제목이자 책의 주제인 회복탄력성은 경제나 물리 과목에서 쓰일 법한 어려운 개념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쉽고 명확하게 회복탄력성에 대해 설명하며 그 사례로 역경을 딛고 성공한 해리포터의 저자인 조앤 롤링이나 동화작가 안데르센 등 유명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입시에 실패했지만 그것을 발판삼아 더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하던 대학교 이상의 학교를 들어갔던 고등학교 친구나 복잡한 대인관계로 우울증을 겪지만 이를 극복하고 전보다 훨씬 더 활발해진 과 후배 등 회복탄력성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무공이 바닥에 부딪혀도 그 바닥을 딛고 더 높게 튀어오르듯, 자신이 직면하는 시련과 역경을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삼고 그러한 자신의 경험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책에서는 KRQ-53 테스트라는 회복탄력성 측정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에 따르면 회복탄력성 지수는 자기조절능력과 대인관계능력, 긍정성 세 가지 범주의 점수를 합한 값이 되며 각 범주는 다시 세부적으로 3가지 능력의 합으로 나뉜다.

먼저, 자기조절능력은 감정조절력과 충동통제력, 원인분석력으로 구성되며 긍정적 정서를 강조한다. 이 능력치가 높은 사람은 단순히 인내하는 것을 넘어 성장을 위한 노력을 즐길 수 있는 능력과 모든 일을 객관적이면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춘다.

다음으로, 대인관계능력은 소통능력과 공감능력, 자아확장력의 합으로 나타나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주체성을 가지며 공감과 긍정성을 통한 건강한 대인관계 형성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긍정성은 자아낙관성과 생활만족도, 감사하기라는 세 가지 지수의 합으로 결정되며 자기조절능력과 대인관계능력을 높이려면 긍정성을 높여야 한다.

나는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과 그 해결방법의 핵심적인 요소는 타인이라고 생각해서 세 가지 범주 중에 대인관계능력을 강조하고 싶다. 많은 문제들이 타인에서 시작한다. 타인의 시선과 타인과의 관계, 타인과의 비교에서 겪는 스트레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겪으며 힘들어한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공동체적이지만 경쟁적인 사회에서 대인관계로 인한 역경은 더욱 심하다. 그 결과 나라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우울증을 경험하며, 10대와 20대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니 과연 우리나라에서 대인관계로 힘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다.

나도 사람을 대하는 것이 미숙하던 중학교 때 거의 매일같이 일기에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을 담았고 가끔씩 밤에 혼자 팔당대교에 서서 뛰어내릴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우울증으로 인한 불면증과 가위눌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대인관계로 인한 많은 어려움을 대인관계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겪었던 힘들었던 과거들도 사람에서 시작했지만 이를 이겨내게 한 것도 바로 사람이었다. 고무공이 튀어 오르려면 바닥이 있어야하듯이, 내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믿고 도와주고 대화해주는 친구들은 나에게 바닥이 되어주었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치유되기를 반복했더니 이제는 웬만한 힘든 일과 안 좋은 기분을 몇 분 만에 탈탈 털어버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러한 과정은 대인관계능력의 세부요소 중 자아확장력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아확장력은 자신이 타인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를 의미하며 그 근본은 긍정적 정서에 있다. 그러므로 타인과 깊게 연결될수록 긍정적 정서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또한 책에서 좋은 친구는 자아확장력과 소통능력, 공감능력을 높여서 대인관계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말한다. 그렇게 높아진 자아확장력은 긍정성을 높이고, 높아진 긍정성은 자기조절능력과 대인관계능력을 높여 회복탄력성을 높아지게 한다. 게다가 높아진 긍정성은 행복의 기본수준을 높여주며, 행복해졌기 때문에 회복탄력성이 높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높아진 회복탄력성은 다음에 찾아오는 어려움을 더욱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게 한다.

책의 부제에서 시련을 행운으로 바꿔주는 비밀의 정체는 회복탄력성이었지만, 그 속에는 타인이라는 요소의 영향이 컸다. 힘든 시기에 옆에서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로 인해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겪은 시련들은 오늘 하루도 매사에 감사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미래에 어떤 일이 생겨도 잘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었다. 그 때와 지금의 하루를 생각하면 회복탄력성이란 과거가 나에게 선물하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 하루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서 마음이 힘들거나 시련과 역경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지금의 하루가 더 행복하고 긍정적일 미래에 선물할 자산을 비축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나를 정신적으로 지지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아마 그 날은 한충 더 나아진 기분으로 잠에 들 수 있지 않을까.

 

 

 

 

최대한 일병과의 일문일답

 

독서는 얼마나 하나? 독서는 어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군생활동안 1주일에 3권씩 보는 것을 목표로 병영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있습니다. 책은 다른 어느 매체보다도 더 글쓴이의 생각과 그가 바라보는 세상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어서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생각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독서는 그러한 체험을 통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줄이고 더 폭넓게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습니다.

 

독서코칭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참여 소감은? 독서코칭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평소에는 대화할 기회가 없는 다른 대대 병사·간부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들을 공유하면서 지금껏 혼자 했던 독서로는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고, 독서 후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체감했던 경험이 독서코칭으로 얻은 값진 선물인 것 같습니다.

 

회복탄력성을 읽고 쓴 수상작을 보면, 입대 전 힘든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것을 견디어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남들과의 비교의식에서 오는 열등감과 나의 한계에 대한 실망감, 늘 어려웠던 대인관계와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20살 언저리까지 우울증이나 가위눌림 등으로 괴롭혔습니다. 그 시간들을 학창시절에는 소중한 몇몇 친구들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고, 20살 이후에는 여자친구의 긍정적인 생각과 도움이 저 또한 매사를 긍정적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군생활 목표가 있다면?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2년의 시간을 벽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발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역하는 날까지 게을러지지 않고 목표했던 공부, 독서, 운동 등을 성실하게 하면서 시간을 허공에 날리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홀해지지 않고 소중한 인간관계를 잘 가져가는 것이 두 번째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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