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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이긴다, 일본 넘으려면 이 책부터! ①
  • 작성자. 캠프리딩
  • 등록일. 2019.09.03
  • 조회수. 234

일본을 알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3권

   

한국의 징용자 배상 판결을 일본이 수출 규제로 맞받아치고 

이걸 다시 한국인들이 일본제품 불매 운동으로 이어가면서 한일관계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전쟁에 승자 勝者 같은 건 없고 다만 정도를 달리한 패자 敗者만 있다지만 

일단 시작했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최선의 시작은 상대를 아는 것이다

이 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우리가 알아야 할 일본'이라는 테마로 일본 근세사를 정리한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카와이 아츠시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펴냄                                                                 이윤섭 지음 / 아이필드 펴냄

 

 

 

 

 

 

한일관계가 풀기 어려운 건 불균형한 전적戰績 때문이다. 때린 기억은 없고 대체로 맞은 기억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맞았다. 110년 전에는 그로기 상태에서 식민지가 됐고 75년 전 압제에서 풀려났다

때린 기억은 까마득하다. 사실 때린 것도 아니었다. 1274년과 1281년에 때리러 갔다가(여몽원정군) 태풍을 만나 돌아왔으니 심리적으로만 때린 셈이다. 게다가 기억이라는 건 최신판일수록 강렬하다

당연히 감정이 좋지 않다. 서유럽 국가들은 중세에서 현대까지 안 싸운 날이 없다. 영국과 프랑스는 앙숙이고, 프랑스는 독일과 앙숙이며, 독일도 영국과 앙숙이다. 그런데도 잘 지낸다

서로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 번 세게 때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일 관계, 이 부분이 참 아쉽다. 한국 입장에서 일본은 식민 지배를 사과하지 않는 뻔뻔한 족속이다. 일본은 어떨까

일본에게 한국은 끊임없이 자기들을 망신 주는 나라다. 성노예라며 대사관 앞에 소녀 동상을 앉혀놓더니 미국을 시작으로 해서 이제 전 세계로 그 망신을 수출할 기세다. 일본은 수치의 문화가 지배하는 나라다

죄罪에 대한 문화는 크게 두 종류다. 서양은 죄의 문화, 일본은 수치의 문화다. 죄의 문화에서는신의 눈이 기준이다.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신이 보고 있다. 해서 도덕심을 발휘하지 않고는 못 견딘다. 일본의 수치 문화는남의 눈이 기준이다. 해서 국제사회에서 틈만 나면 자기들의 과거를 들추는 한국이 미워죽을 것이다. 이전 기억에서 자유로운 세대가 등장하면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글쎄올시다. 원래 인간이란 게 개인일 때는 현명하고 이성적이지만 집단이 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광기에 휩싸인다.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보편 중의 보편이고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그런 인간이 하나도 안 나온다는 보장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니 한일관계는 앞으로도 주구장창 암울할 것이다. , 내 생각은 그렇다는 얘기다.  

 

 

 

지금의 한일 관계는 경제 분쟁이 아니다. 사실상의 전쟁이다. 외교 분쟁이 경제 분쟁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는 원칙이 있다. 상대의 전력戰力을 측정할 수 없다면 그 전쟁을 피해야 한다. 여기서 전력이란 상대가 얼마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지, 항공모함을 몇 척이나 바다에 띄울 수 있는지 같은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이고 그 나라 국민들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 역시 군사력만큼 중요하다. 한일 분쟁을 놓고 어떤 이야기들이 돌고 있는지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웬 놈의 군사 전문가와 경제 전문가가 그리 많은지 죄다 확신을 가지고 자기 말이 옳다 떠들어 내고 있었다. 반면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일본인은 어떤 민족인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영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다면 우리는 일본에게 백전백패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지금부터 근거를 대겠다. 

 

 

 

얼마 전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러면서 딴에는 이해를 돕는답시고 일본 역사와 인물을 끌어들였다. 주목할 발언은 둘이다. 하나는요시다 쇼인과 다카스기 신사쿠가 살아 있다면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에 대한 나의 평가에 동의할 것이라 확신 한다.”는 말이었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 정한론(조선을 정복하자)의 아버지다. 자기들이 서구 열강에 빼앗긴 것을 동양 특히 한국에서 보충하자는 주장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요시다 쇼인과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이라고? 내가 일본 기자였다면 이렇게 해설을 달았을 것이다. “요시다 쇼인과 신사쿠가 등장하긴 하는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당최 모르겠음.” 두 번째는앙숙이었던 사쓰마와 조슈가 손잡고 메이지유신을 이뤄낸 것처럼, 한일도 손잡으면 함께 동북아가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건 더 어이가 없다. 사쓰마와 조슈가 연합해서 메이지이신을 이룬 것은 맞지만 그 전에 둘이 한 일은 막부를 타도한 일이다(보통 메이지 유신이라고 하는데 왜 메이지는 일본식으로 읽고 유신은 한자로 읽는지 모르겠다. 메이지이신이든 명치유신이든 한 가지로 통일할 일이다. 물론 정확한 것은 메이지 이신이다). 해서 이 문장이 올바르려면 다음과 같은 용례로 쓰일 때만 타당하다. “한일이 손잡으면 중국(혹은 미국)을 몰아내고 동북아를 발전시킬 수 있다.” 내가 일본 기자였다면 이렇게 평을 달았을 것이다. “계속해서 외계어로 지껄이고 있어 해독이 불가능함.”

 

 

 

물론 고위공직자라고 해서 머리까지 고위高位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이쯤에서 멈추자. 이 분의 발언에서 진짜 문제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메이지이신 이후 갑자기 솟아오른 국가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다. 1853년 페리의 검은 배가 에도 만에서 위용을 자랑하는 것으로 시작된 일본 근대화는 20여 년이라는 짧은 세월에 완성된다. 서양의 근대화가 대개 백년 이상 걸린 것을 생각하면 초현실적인 속도다. 이유는 일본인들이 개혁에 워낙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나서? 절대 아니다. 아무리 머리가 비상한 초등학생이라도 교재만 가져다준다고 바로 수능을 볼 수는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기간 동안의 축적된 학습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역사에 지름길은 있어도 비약은 없다. 우리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바로 메이지이신 전의 에도 막부 260년인데 이 시기에 대한교과서적인정답은 일본의 쇄국정책 시기다. 에도 막부 기간 동안 내내 나라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가 페리 제독의 내항으로 갑자기 근대화를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퍼펙트한 오해다. 일단 에도 시대에는 쇄국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고 에도 막부는 신나게 무역을 했다. 일본이 수출한 동銅은 유럽 경제에 영향을 줄 정도였고 에도의 부자들은 유리잔에 와인을 마셨다. 이재에 밝은 몇몇 상인들이 몰래 한 교역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역시 전혀 아니다. 

 

 

 

에도 막부를 창건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절 영국 배 한 척이 난파하여 일본 해안에 밀려온다. 여기 타고 있던 사람이 윌리엄 애덤스로 일본에 온 최초의 영국인이다. 윌리엄 애덤스는 눈이 쭉 찢어진 야만인들이 자기들 죽일 줄 알았다. 웬걸. 윌리엄 애덤스가 끌려간 곳은 처형장이 아니라 이에야스의 처소였다. 일본은 이미 전국 시대인 오다 노부나가 시절부터 포르투갈과 거래를 했던지라 유럽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거부감은커녕 일본인들은 오히려 유럽인들을 야만인 취급했다. 하루에도 두세 번 목욕을 하는 자기들과 달리 전혀 씻지를 않았으며 음식을 나이프로 자른 뒤 손으로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사람은 여럿 봤지만 영국 사람은 처음이었던 이에야스는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었다. 무엇보다 영국은 일본과 같은 섬나라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이에야쓰는 윌리엄 애덤스가 마음에 들었다. 일단 그가 포르투갈 사람들과는 달리 선교 의지가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배 만드는 기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윌리엄 애덤스는 수시로 이에야스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도 대부분 독대였다. 그게 뭐 대단하냐고? 일단 비슷한 시기의 조선 왕 선조가 제주도에 표류한 하멜을 궁 안으로 불러 밤새 대화를, 그것도 하멜이 원할 때마다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림이 그려지는가. 우리 상식으로는 안 나오는 그림이다. 게다가 이에야스와의 독대는 파격 중의 파격이었다. 지방 실력자들인 다이묘들조차 이에야스를 만나러 오면 처소 입구에서부터 무릎으로 기어와 절을 했으며 대화는 고사하고 감히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선물을 앞에 밀어두고 엎드려 있다가 물러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독대에다 심지어 자유로운 대화라고? 당시 일본인들의 상식으로는 신문 일면 톱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서양문물에 대한 이에야스의 갈망은 그만큼 강렬했고 막부의 최고위층부터 해외무역에 열성이었다. 윌리엄 애덤스는 나중에 이에야스의 무역 담당 비서관이 된다. 그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몰려있던 무역 경로를 봉쇄하고 이를 네덜란드에 몰아주었다(윌리엄 애덤스는 영국인이었지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네덜란드의 무역 독점은 페리 내항까지 215년간이나 지속된다. 쇄국, 같은 건 없었다.

 

 

 

그럼 대체 에도 막부는 어떤 사회였을까. (사무라이)이 지배한 사회였으니까 숨이 턱턱  막히는 공간으로 이해하기 쉽다. 역시 아니다. 상징적으로 몇 개만 들어보자. 일단 책 읽는 사회였다. 에도 시대에 출간된 서적만 10만 종이다. 저작권(작가)이 있었고 판권(출판 권리)이 있었으며 대본소 시장이 활성화되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도 쉽게 책에 접근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의 식자율(문서를 읽고 쓰는 사람들의 비율)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높았다. 난일사전(네덜란드-일본어 사전)이 만들어진 것도 에도 시대다. 난일사전에 이어 영일 사전이 그 뒤를 이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어 한자인 경제, 자유, 물리, 화학 같은 말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대장금이라는 한국 고전 드라마가 있다. 주인공 장금이의 꿈은 환자를 상대로 외과수술을 한 번 해보는 것이다. 소설과 드라마로 유명한허준에서도 허준의 욕심은 신체를 해부해서 사람 몸속을 들여다보는 거다. 실증의학에 대한 조선 의료인들의 바람은 허용되지 않았다. 에도 시대는 어땠을까. 호시노 료에쓰라는 의사는 사형수의 신체를 해부해서 이들 토대로 인체 목골木骨을 만들었다. 1792년의 일이다. 하나오카 세이슈라는 의사는 세계 최초로 전신마취 수술을 집도했다. 유방암 수술이었는데 이게 1804년이다. 지식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상업이 발달하고 의학이 발돋움한 이 시대를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사회라고 부른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서양 무역을 시작했을 때 재력이 부실한 상인들은 몇 명씩 모여 공동 투자로 선단을 구성했다. 요새말로 하면 창업투자회사다. 무역하러 나갔던 배가 침몰하면 낭패에 패가망신이다. 그래서 발생한 게 해상 보험이다. 집에 돈을 쌓아둘 수 없으니 발생한 게 은행이다. 이게 전부 14~15세기에 벌어진 일들이다.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이 발발하고 전 세계가 자본주의로 이동하기 시작했을 때 그 기반이 되는 제도는 이미 한참 전 만들어져 있었다는 얘기다. 메이지이신도 비슷하다. 근대화의 바탕이 되는 자본, 시장, 경쟁, 선물시장 등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이 이미 에도 시대부터 돌아가고 있었다. 해서 메이지이신의 20년 기간만 가지고 일본의 근대화를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적어도 200년 이상의 세월이 바닥에 깔리고 그 위에 안착한 게 메이지 근대화라는 얘기다.

 

 

 

예전에 한 역사를 아주 잘 아는 일본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나도 순서가 헛갈리는 삼국시대의 전쟁에서부터 조선의 실학 그리고 45년 해방 이후 우리가 걸어온 노정을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기특했냐고? 솔직히 무서웠다. 세상에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적보다 무서운 상대는 없다. 이 글만 읽고 끝나면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 손으로 넘기고 줄 치고 메모하지 않은 지식은 절대 뇌에 쌓이지 않는다. 반드시 읽어야 할 일본 관련 책 세 권을 소개한다. 먼저일본 100이다. 개방에서 1955년 패망 후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연대기 순으로 잘 설명되어 있다. 일종의 일본사史 사전처럼 활용하기에 적당하다. 다음은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일본사하룻밤에 읽는 일본사. 앞의 것은 전직 외교관 출신의 한국인이 썼고 뒤의 것은 일본인 고등학교 교사가 썼다. 비교해서 읽어야 하는 것이 한국인이 보는 일본과 일본인이 말해주고 싶은 일본 역사는 다르기 때문이다. 에도 막부 260년 동안의 쇼군이라야 15명이다. 대부분 왕가의 계보가 똑똑한 인간 3분의 1에 바보 같은 인간 3분의 2 정도의 비율인데 에도 막부 쇼군의 역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창업 쇼군 이에야스, 강화 쇼군 이에미츠, 선정 쇼군 이에노부, 중흥 쇼군 요시무네 그리고 어이없는 쇼군들인 애견 쇼군 츠나요시, 정력 쇼군 이에나리 정도를 읊을 수 있다면 일본인들도 절대 무시 못 한다. 극일克日과 지일知日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반드시 지일 다음에 극일이 있고 취향에 따라 반일反日도 있다.

 

 

남정욱 작가


 

 

사족 :  글에서 '우리'라는 지칭 대신에 '한국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라고 하는 순간 객관성을 잃고 글이 편향될까 봐서다. 유체이탈화법 아니고 나름 고민한 흔적이니 감안해 읽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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